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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Oct 06. 2023

지금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 곳

일과 사람

"제가 창업까지 하게 될 줄을 몰랐어요. 그냥 예전 팀원들과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비즈니스 모델의 스토리가 흥미로워 발전시켜 나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딥테크 스타트업의 CFO였던, 회계사 Y. 회사보다는 Y에 대한 업무적, 인간적 호감 때문에 따로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로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오랜만에 만난 이 스타트업의 세일즈 담당 임원과 티타임에서 Y가 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토리의 골자는 이 회사의 대표 리더쉽의 문제였다. 창업자인 대표의 업무처리 방식에 대한 불만들이 조직에 켜켜히 쌓였었다고 한다. 이 갈등의 불씨가 화마로 변해 서비스의 핵심인력인 공동창업자 CTO가 퇴사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이어 CFO Y, Product Team Head까지 줄퇴사가 이어졌다. CTO가 퇴사한 회사의 서비스의 미래는 불 보듯 뻔 했다. 


Y는 퇴사 이후 한 PE의 제안으로 바이아웃 포트폴리오사 CFO로 이직을 했다. 퇴사 후에도 회사의 지분과 함께 서비스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던 Y와 CTO는 회사 대표의 퇴임이란 강수를 둬서라도 서비스 정상화를 주제로 한 모임을 정기적으로 해 왔다고 한다. 


이는 퇴사자 모임으로 발전을 하며 몇 명의 멤버가 더 모였고, CTO가 계획하는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주제가 추가가 되면서 급속도로 사업화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고 한다. 올 해 3월부터 약 6개월 간의 정기 모임 끝에 Y는 다시 퇴사를 결심하고 법인 설립 등 창업의 마무리 작업과 함께 시드(Seed) 라운드를 계획한다. 


판교의 한 식당에서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볶음밥과 탕수육을 앞에 두고 들었는데, 대화가 끝날 때까지 식사 시작을 못했었다.  


Y의 회고의 핵심은 기울어져가는 배 안에서 오랜 기간 합을 맞춰온 신뢰를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음에 대한 감사였다.  


돌아보면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예전 회사가 어려워져 경영진이 매각 의사결정을 했었다. 나는 당시 M&A TFT에 차출이 되어 내가 다니는 회사를 매각하는 업무를 했었다. 만약 매각이 실패했을 때 Plan B는 인력을 포함한 사업구조정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굉장히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따가운 시선과 함께 일을 했던 것 같다. 그 때 동고동락했던 팀장님이 그 전쟁통을 지나 지금까지 나와 좋은 인연으로 남았다. 지금 나는 그 조직을 나와 사모펀드에 있지만 언제든 일로 이어질 수 있는 팀장님을 위한 소켓은 열어 두고 있다. 


Trust


내가 어느 회사에서 일 했는지 보다는 누구와 프로젝트를 했는 지가 먼저 기억이 나고, 결국 남는 것도 했던 일과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있는 회사가 어려운 환경 속에 있더라도 팀이 좋으면 함께 버티고 성장할 수 있는 거고,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는 회사라도 팀이 싫으면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금리급등의 후폭풍이 거세다. 또 다시 시장이 오랜 기간 얼어붙지 않을지. 나의 시선도 당장 답이 안 나오는 시장만을 응시하기 보다는, 팀원을 먼저 바라보고 함께 개선의 여지가 있는 빈 틈을 찾아 나가는 쪽으로 둬야 하지 않을까. 이런 다짐과 함께 이번 주 마지막 영업일을 마감한다.



*그림은 DALL-E로 만든 '일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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