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오늘은 너의 이름, '태명'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어. 너의 태명 '축복이'는 그냥 지어진 이름이 아니란다. 그것은 아빠와 엄마가 두려움과 불안을 딛고, 너라는 존재의 힘과 기적을 비로소 깨닫게 된 아주 특별한 순간에 태어난 이름이야.
사랑하는 아가야,
너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 솔직히 아빠의 마음도 마냥 기쁘기만 하진 않았어. 물론 가슴이 벅차기도 했지만, 동시에 갑작스럽게 무거운 짐이 어깨에 얹어진 것 같은 복잡한 기분이었지. 엄마의 마음은 그런 아빠보다 훨씬 더 깊은 불안의 늪에 빠져 있었단다. 엄마는 우리같이 가진 것 없는 연약한 부모가 과연 너를 잘 키워낼 수 있을지, 혹시라도 나중에 네가 커서 “왜 저를 낳았어요?” 하고 우리를 탓하게 될까 봐, 그런 막막하고 유별난 걱정들로 밤잠을 설쳤어. 엄마는 너를 가진 이후로 마치 세상의 모든 근심을 혼자 짊어진 '걱정봇' 같았단다.
앞서 얘기했지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던 그날, 두 분의 얼굴은 세상 그 어떤 보물보다 소중한 너의 소식에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셨단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활짝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아빠는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한편에선 불안해하는 엄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지.
그날 밤, 아빠는 엄마를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주황빛 무드등과 잔잔한 음악을 켜주었어. 엄마는 침대 위에 이불을 반쯤 덮은 채 그저 멍한 상태였지. 아빠는 아빠는 조심스럽게 엄마의 곁에 누워, 크고 투박한 손으로 작고 여린 엄마의 손을 꼭 잡았어. 차갑게 식어있던 엄마의 손을 이불속에 넣어주며 조심스럽게 속삭였지.
"난 직접 아기를 품고 있는 자기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이 것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요. 우리가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로 만들 거예요."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 아기가 나중에 커서 왜 자기를 낳았냐고 우리를 탓하면 어쩌지?"
"그럼요. 나 잘할 수 있어요. 당신이 이렇게 우리 아기를 생각하는 거 보면, 우리 아기도 나중에 자기를 참 좋아할 거예요. 나중에 엄마한테만 꼭 붙어 다닐걸?"
아빠는 엄마의 뺨을 만지며 힘 있게 얘기했어.
"내가 꼭 그렇게 만들게요. 당신 걱정하지 마요"
엄마는 아빠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빠 품에 안긴 엄마의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어. 그 눈물은 엄마가 병원에서 흘리던 눈물과는 사뭇 달랐어. 병원에서 흘렸던 눈물이 두려움과 책임감의 무게로 가득했다면, 이번에 흘린 눈물은 걱정만 하는 미안함이 담긴 눈물이었어.
그렇게 아빠와 엄마는 한참을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있다가, 병원에서 주는 산모수첩을 그제야 꺼내보았어. 일기장 형식처럼 되어있지만 복잡한 표들도 있었는데 기록할 것이 산더미 같아 보여서 괜스런 압박이 느껴지곤 했어. 그러던 중 아빠는 병원 초음파 영상을 어플로 볼 수 있다고 한 간호사의 말이 기억이 났어. 어쩌면 엄마가 이번엔 널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심히 시도를 했지.
"병원에서 '마미톡' 어플을 설치하면 우리 아기 초음파 영상 다시 볼 수 있대요.... 볼래요?"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처음 켜자마자 난관에 부딪혔지. 너의 초음파 사진을 보려면 준비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태명'
아차 했어. 너무나 정신이 없던 나머지 태명도 생각을 못해봤어. 아빠와 엄마는 얼른 인터넷에서 다른 아기들의 태명을 찾아보았어. '튼튼이', '건강이', '행복이', '기쁨이'… 정말 사랑스럽고 예쁜 이름들이었어. 어찌나 그렇게 태명들을 잘 짓는지. 용띠라서 '용용이'라는 태명도 있었는데 아빠와 엄마는 그런 이름들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어. 엄마의 얼굴을 흘긋 봤는데, 엄마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흘렀어. 모두 예쁜 이름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 아기에게는 조금 다른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았어. 엄마의 마음을 녹여줄 이름, 아빠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문득 아빠의 마음속에 너를 가장 잘 표현해 줄 단어 하나가 떠올랐단다.
'축복'
아빠는 엄마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말했어.
“자기야, 우리 아기 이름은 ‘축복이’라고 하는 게 어때요?
엄마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지친 하루에 억눌린 목소리로 힘겹게 얘기했지.
"너무, 예쁜 이름이에요. 우리 축복이..."
그리고는 엄마는 '축복이'를 연신 부르며 아직은 평평한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지. 그 미소는 불안으로 가득했던 엄마의 얼굴에서 보이는 힘겹지만 가장 빛나는 미소였지. 그제야 우리는 둘이 함께 손을 잡고 너의 초음파 영상을 다시 보았어. 젤리곰 같은 너는 콩알보다 더 작은 모습으로 엄마의 몸 한편에 자리 잡았단다.
아빠와 엄마의 마음은 다시 벅차올랐어. 병원에서 처음 들었던, 힘차게 울리던 너의 심장 소리가 다시금 아빠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지. 엄마와 아빠와는 다르게 너는 힘차게 심장으로 소리치고 있었어. 그 작은 몸으로 씩씩하게 이 세상에 존재하려 애쓰는 너의 모습을 보며 엄마도 더 이상 풀이 죽어 있지만은 안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 그날 따뜻한 무드등 속에서 울려 퍼지던 심장 소리는 우리를 행복한 저 편으로 이끌어주었어.
'축복이'는 그 이후로 아빠와 엄마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행복의 주문이자 너를 미리 불러보는 속삭임이 되었어. 언제 어디서나 너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던 모든 무게를 덜어주었고, 보이지 않는 너와 연결된 기분이 들었단다.
그날 그렇게 아빠와 엄마는 따뜻한 무드등 아래서 너의 이름을 계속해서 속삭여 불렀어. 그리고 너와 함께할 아름다운 날들을 꿈꿨지. 엄마와 아빠의 두려움도 너를 생각하면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어.
왜냐하면, 너는 우리 가족의 '축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