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누구에게나 세월을 먹은 옷이 필요하다.

by 한약초콜릿

소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의 옷차림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문장들을 발견하게 된다. 격식에 맞는 슈트를 차려입었다거나 해진 티셔츠나 올이 풀린 카디건을 착용했다는 인물들은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같지만 암시가 그 기능이다.
또한 자질구레하게 분위기 묘사를 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된다는 점도 장점일 것이다. 옷이 낡았다거나 매무새가 흐트러졌다는 표현으로도 충분히 인물의 상황이나 성향을 적잖이 유추해내는 일은 일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소설 속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생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지거나 올이 빠졌거나 보풀이 거품처럼 인 옷들은 어떠한 경로로 그 지경에 이르렀는지 옷의 주인은 필시 알고 있다. 옷을 입고 뒹굴던 나날들에 관한 특별한 기억은 없어도 무료하고 평온한 일과를 보냈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되기도 하고 치열한 하루와 맞서느라 열심히 성심껏 무엇이 됐든 활동을 하면서 생겨난 결과다.


만약 큰맘 먹고 구매한 부드럽고 유들거리는 캐시미어가 섞였다는 고가의 모직코트를 걸치고 최대한 몸가짐을 신중하게 처신해서 밖을 돌아다니다 귀가해 옷을 살폈을 때 원치 않는 원단의 필링을 발견할 때면 제값을 못한다고 코트를 비난하거나 자신의 행동거지 범위를 반성하게 될 때면 옷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얻게 된다.
옷을 입고 벗는 그 하찮아 보이는 과정을 매일 반복하면서 어떤 일에 정신이 팔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되는 때에서 멀어져 알몸과 직면해서야 ‘나’라는 인물에 대해 잠시나마 탐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 옷에 한해서나 이런 탐구정신도 발동된다. 새 옷도 머잖아 헌 옷이 되면 언제 깔끔병을 떨었냐는 듯 비로소 맘 편히 막 입는 옷으로 변질되는 건 막을 수 없는 새 옷의 노화현상 같은 것이다. 노화된 옷. 나와 정든 옷. 나와 밥을 먹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소파에 드러누워 티브이 방송을 보며 함께 키득거리거나 눈물을 쏟는 그 모든 매개에는 낡은 옷이 있다.

공식기록으로는 남지 못할 나의 개인사를 옷은 제 한 몸 바쳐 열거해준다. 그래서 옷장에서 잠자고 있는 자주 입지 못한 옷들을 보면 왜 샀을지 한심해하거나 벼룩거래로 죄책감을 씻기도 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정당하게 돈을 주고 옷을 샀지만 그 옷이 내 옷 같지 않은 느낌이 있다면 아직 그 옷과 덜 친해진 거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서로를 관찰한 후에도 서먹하다면 가감하게 옷장에서 방출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71101230626_4_filter.jpeg 모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