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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솔 Dec 15. 2022

봄이 오면 소풍을 떠나리

코로나 확진에 이어 퇴사하고 느낀 것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한평생이 주마등처럼 보인다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아마 밝게 웃던 얼굴, 행복했던 순간, 맛있는 음식이나 경이로운 풍경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무렴 죽는 순간마저 나쁜 기억을 되새기고 싶진 않겠지. 삶은 즐거움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과제는 나중으로 미루고 소풍을 떠나는 기분처럼 말이다. 이른 새벽부터 도시락을 챙기고 부랴부랴 출발 장소로 향한다. 오늘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신나게 놀 수 있다. 상큼한 봄철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올해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평생 충성할 거라 다짐했던 회사를 떠났고, 코로나에 걸려 이대로 죽을까 봐 유서도 써봤다.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기대했던 찰나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러다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지내면서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방황할 때쯤 새로운 마음 가짐을 터득하게 되었다.


별생각 없이 떠난 소풍 장소에 해맑은 소년이 나타날 줄이야.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내게 일침을 줄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그 소년은 밤이면 병마의 괴롭힘을 받는다. 편안하게 잠들 시간에 아픔이 가득 찬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긴 암흑일지 상상되지 않는다. 그 힘든 것을 겨우 참아냈는데, 터널을 지나고 보니 눈앞에 낭떠러지뿐이라면? 도로 후퇴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할 수도 있겠다. 해맑게 웃는 미소 뒤에 가려진 소년의 어젯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거울 속에 비친 그 소년은 청순하고 해맑은 20대의 나였다.


배신, 갈증, 이별, 방황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들이었다. 힐링을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되었다. 직장에 대한 고민은 더 나은 회사에 취직하면 그만이고, 한때 절절했던 사랑도 이별 끝에는 성숙한 마인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암흑 속에서 단련된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강할 것이다.


일시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잊고 살았다. 무작정 전시회를 관람하며 공연을 예매하다 보니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결론은 내가 행복하고 즐거워야 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진 몰라도 오늘은 소중한 하루라는 걸 깨달았다.


봄이 되면 상쾌한 날씨에 끌려 어딘가로 소풍을 떠나자. 종일 행복할 거라 기대한다. 그러다 소나기가 내리거나 거센 바람이 불어올지도 모른다. 기분을 더럽혀도 조금만 참기로 한다. 비가 오고 나면 공기가 한결 산뜻 해질 테고, 맑은 하늘에는 무지개가 걸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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