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즉 말을 하지
여전히 고객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것도 디자인이 다 끝나고 나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디자인을 의뢰하는 고객, 그런 고객에게 디자인을 의뢰받은 디자이너. 둘 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것이 베스트다. 그리고, 매번 그런 상상을 한다. 끝이 아름답고 깔끔하기를. 그러나, 마지막에는 고객의 저런 반응과 함께 디자이너의 빡침이 부딪친다. 이런 사례가 종종.. 이 아니라 아직도 자주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원인을 알게 된다면 혹시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완화될 수는 있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 보자.
1. 알아서 잘해 주세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아니, 사실 열 길 물속 역시 알기는 어렵다. 생각은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뀐다. 여기서 '길'은 평균 한 사람의 키를 말한다. 정확한 단위는 아닌 듯하다. 아무튼, 디자인은 그냥 취미로 전문가에게 의뢰하지 않는다.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예산을 사용한다. 고민이 안될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 고민(디자인)을 자기가 하는 것보다 전문가의 판단과 실행에 맡기는 것이다. 당연히, 고객은 디자인 비전문가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본인이 최대한 원하는 걸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과정은 그냥 전적으로 맡겨버리는 것이다. 믿음의 크기가 크다고 볼 수도 있고, 무책임 혹은 다른 일이 너무 바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신뢰하거나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맡은 디자이너는 본인의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일을 한다. 이 디자이너가 튀는 걸 싫어하는 무던한 성향이라면 사고의 확률은 줄어들겠지만, 특이한 성향이나 관점을 가졌다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2. 제가 하나하나 계속 봐야 할 것 같아요
또 다른 실감 나는 케이스다. 아무리 디자인 비전문가라고 해도 취향은 누구나 있다. 거기에 조급한 마음에 얇은 귀를 소유한 고객이라면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게 된다. 보통, 필자가 생각하는 '수정하다'라는 개념은 T(True)와 F(False)다. 수정하지 않으면 틀리게 되는 것이 대상이다. 예를 들어 과일인 '수박'을 표시하려는데 '수반'으로 타이핑을 하면 틀린 것이다. 수정대상이다. 그 외의 것은 디자인 품질, 개인적 취향, 세련됨 등의 문제다. 일단, 수정할 부분을 가장 먼저 체크한 후 최초 디자인 결과물이 나온다. 이때에도 디자이너들은 기본적인 검토는 끝났을 경우가 많다. 그 분야가 제품, 시각, 포장, 서비스 뭐라도 말이다. 수정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고객의 취향이 이어진다. 간단하게 말해서, 비전문가의 개선행위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당연하지 않은가? 보는 건 누구나 잘할 수 있지만,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높은 디자인 품질을 더해가면서 말이다.
그럼, 뭐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딱 하나다. 대화하고 대화하고 대화해야 한다. 디자인 프로젝트 계약이 끝나는 그 시점부터는 지속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일반 고객들은 잘 모르는 것이 있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가 되더라도 가슴으로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일반인의 상상보다 훨씬 더 디자이너들의 표현능력은 빠르다. 일정이 시작됐는데 아직(?) 디자인을 안 하는 것 같아 보이면, 조급증이 번진다. 이른바, 방향과 계획, 콘셉트가 명확하다면 이를 표현하는 디자인행위(Art working)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프로토타입으로 만드는 디자인과 최종결과물로 만드는 디자인에 소요되는 시간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내가 비용을 주고 디자인을 의뢰했으면, 이런 디자인, 저런 디자인, 요런 디자인 등등 가능한 한 수많은 디자인 시안을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제대로 된 디자이너라면(아닌 경우도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쓰잘데 없이 쓰는 에너지를 제대로 된 디자인에 집중하는 것으로 역량을 발휘하는 경우가 옳다.
정리하자면, 대화와 대화와 대화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사람 속을 모르고, 생각은 하루에 열두 번도 바뀐다. 이는 고객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들도 그렇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나 발전하는 내용을 두 이해관계자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를 넘어서 결과에 이르는 단계가 되었을 때 어느 정도 완성결과에 대한 예상을 함께 나눌 수 있다. 그런 다음에는 세부적인 품질 육성에 들어가고, 디테일을 보완해 가면서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우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생각을 말로 혹은 글로 제대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고, 그걸 전달하는 건 더 힘들다. 타인의 그런 의도를 내가 백 퍼센트 이해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된 이후가 되어야 비로소 디자인 작업은 시작할 수 있다. 그래야, 디자인하는 의미가 있고, 필요에 의한 만족도를 상승시킬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그 결과물로 시장이나 사용자의 경험을 향상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대화가 어렵다. 그러나, 이런 시도 저런 방법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미래를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숙명인 것 같다.
고객과의 아름다운 엔딩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