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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물의 길(스포유)

by 송기연

연휴가 시작됐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연휴 첫날은 밤늦게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한 잔의 위스키나 와인, 그리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 영화 한 편이면 연휴 첫 날밤이 즐겁다. 이런 날은 나만의 영화 감상환경이 있다. 우선 거실의 불을 다 끄고, TV에 무선 이어폰을 연결한다. 그리고, 소파를 당겨서 TV와의 거리를 적절히 조절한다. TV는 거거익선(巨巨益善)이라고, 벽보다 작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86인치를 구매했었다. TV에서 적절한 거리는 극장에서 느끼는 화면의 느낌을 주는 정도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운드인데 아파트의 특성상 볼륨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대한 볼륨을 높여서 무선 이어폰으로 듣는다. 한때 프로젝터를 사서 천장에 붙였지만, TV시청과 영화감상의 번거로움을 이기지 못했다.


이번 영화의 선택은 아바타 물의 길이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본 이 영화는 항상 시청리스트에는 올랐지만 긴 러닝타임으로 인해 매번 뒷전으로 밀렸다. 영화감상 환경과 위스키가 준비된 상태가 자정을 넘어선 12시 30분쯤이었다. 러닝시간을 반영하면 4시. 처음 생각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중간만 보고 다음에 나머지를 봐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어설픈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 도대체 무슨 스토리로 3시간 12분을 이끌어 나간다는 말인가? 영화가 시작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4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스토리의 힘은 강하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은 판도라 행성에서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가 이룬 가족이 겪게 되는 무자비한 위협과 살아남기 위해 떠나야 하는 긴 여정과 전투, 그리고 견뎌내야 할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그 사이사이 가족이 중심이 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과 관계가 영화를 이끌어 간다. 사실, 아바타는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이 화제의 주임이었다. 당연히, 영화 초반에는 화면 속에서 구현되는 실사 같은 그래픽 퀄리티에 연신 감탄을 하게 된다. 실사장면과 이질감 없는 그래픽 구현기술이 너무 뛰어났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 감성적이지 않은 아저씨도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가면 캐릭터의 감성에 동화될 수밖에 없어, 영화를 보면서 연신 주먹을 쥐거나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SF영화가 주는 맛이 있다.

우주를 오가는 비행선과 외계인,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그걸 보는 맛이 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화면 속에서 나에게 말한다. 거기에는 희로애락이 있고, 우정과 사랑, 가족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좋다. 시간 낭비다. 여전히 많은 영화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아무리 좋은 배우가 연기하고, 역량 있는 감독이 연출을 해도 이야기의 힘이 없으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아바타를 보기 전에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를 하나 봤는데, 전형적인 연출과 틀에 박힌 스토리 전개 때문에 1화 이후 2화를 보지 않았다. 시놉시스로 본다면 아바타 물의 길 역시 아주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단순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장면을 통해 서술하는 방식은 감독마다 천차만별이다. 언어나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인류로서 그 이야기에 공감해서 기뻐하고 슬퍼하며 분노한다. 이것이 이야기꾼의 힘이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봤다.

많은 사람들이 볼 때 함께 보지 않았어도, 혼자 봤어도 좋은 영화는 좋은 영화다. 가족의 소중함, 연대의 강력함, 관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아울러, 세계적인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을 잘 아는 것 같다. 어떤 관점에서, 이런 걸 원했지?라고 하는 것 같다. 그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이 보이지 않는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은 나의 2025년 1월 25일 새벽 3시간을 투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울러,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던 알리타 배틀엔젤의 두 번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또한, 존윅의 스핀오프 발레리나도 기다려진다. 재미있는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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