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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기 있어요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하여

by 송기연

누구나 살면서 많을 것을 잃어버린다.

우산, 지갑, 책, 이어폰, 머리끈처럼 다양한 물건이 있다. 보통은 사소한 부주의 때문이지만 도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진다. 여성이라면 머리끈이 계속 사라지는 마법을 일상에서 경험할 것이다. 어떤 물건은 잃어버린 후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기도 한다. 단순히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보다, 물건과 연관된 기억이 더 아쉬운 이유일 것이다.


구매 전의 물건은 상품일 뿐이다.

그러나 그 물건이 나의 선택으로 소유물이 되었을 때는 또 다른 의미가 생긴다. 오래된 책에는 손때 묻은 흔적과 기억, 읽었을 때 감정이 서려있다. 선물로 받은 작은 노트나 볼펜은 그냥 볼펜과 노트가 아니다. 최애라는 말을 붙일만한 인형, 액세서리, 옷 등 우리가 소유한 모든 물건에는 나름의 추억이 있고 함께 한 시간이 있다.


물건에는 주인의 체온이 남는다.

오래된 차를 폐차할 때 느껴지는 묘한 서운함을 경험했는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 같다. 지금처럼 추운 날씨에는 왠지 야외주차장에 밤새 세워두는 게 미안할 때도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물건과 관계를 가진다. 이제는 빛바랜 어릴 적 사진이나 편지 등은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면서 나와 연결된다. 한때는 곁에 있었지만, 이제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아쉽고 그립다.


사람의 관계는 어떨까.

잃어버린 물건처럼 잊혀진 사람도 있다. 멀리 떠나거나 지워진 사람과의 기억은 날로 희미해진다. 그렇다고 그 추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떠난 후 비워진 자리는 새로운 무언가로 채워진다. 잃어버린 물건이 가끔은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도 즐겨 쓰던 무선 이어폰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새 제품을 구매했다. 그러고 나서 우연히 가방의 작은 포켓 속에 있던 잃어버린 이어폰을 발견했다. 이미 자기 자리를 내준 그 이어폰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사무실 선반에 올려두었다. 얼마나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서 쉬이 이별하지 못했다.


지하철에는 유실물센터가 있다.

여기에는 주인 잃은 여러 물건들이 최종적으로 모이는 곳이다. 아주 비싸거나 중요한 물건은 주인이 나중에라도 찾으러 오지만, 그렇지 못한 유실물은 폐기 처분된다. 아마, 잃어버린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는 수준에서 이별을 인정했을 것이다. 마치, 유기한 반려동물이 주인이 오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물건들도 그러는 건 아닐까. 새로운 대체물이 내 자리를 온전히 차지한 것을 모른 채 하염없이 혼자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 같다. 지금은 내 곁에 있는 많은 물건과도 언젠가는 헤어짐의 시간이 온다. 천수를 누리기도 할 것이고, 혹은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인연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한낱 사물과의 인연도 이럴진대 사람은 물건과 비할 바 없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잊혀진 사람을 모아놓은 유실물 센터는 없지 않은가. 혹시 또 모르겠다. 나는 잊었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조용히 외치고 있는지.


저,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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