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넷플릭스 다큐 '어른 김장하'를 다시 봤다.
작년 9월에 봤지만, 얼마 전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 이후 다시 보게 됐다. 솔직히 그때는 어떤 계기로 시청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인사청문회 유튜브 쇼츠가 자주 보였다. 자연스럽게 이 다큐가 다시 생각났다. 다큐의 첫 부분에 나오던 울먹이던 판사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다큐도 책처럼 두 번 이상을 보면, 처음과는 다른 내용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더 이상 어울리는 제목이 없다.
막연하지만 상상했던 어른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다. 2부작으로 만들어진 다큐는 담담하게 김장하 선생을 보여준다. 김주완 기자가 퇴임을 한 뒤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는 과정을 통해 천천히 내용을 이어간다. 경남 진주의 남성한약방의 마지막 3일이다. 요즘 '어른'이라는 단어는 기득권이나 꼰대처럼 부정적인 의미가 크다. 존경심이 생기는 좋은 의미의 어른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장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동네 주민의 표현이 나온다. 그렇다. 말하기 쉬운 이 표현은 실제로는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보통의 사람은 적당히 비겁하고, 때에 따라 비도덕적 행동을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영상 속 김장하 선생은 달랐다. 당신 스스로는 최선을 다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같은 범인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른다운 삶을 김장하 선생은 살아내셨다.
우리는 무엇을 내어줄 때 받을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김장하 선생은 그러지 않았다. 김장하 선생은 20대 젊은 시절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100억이 넘는 가치를 가진 명신고를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지금까지 1,0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인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찾아왔는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면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으라"
나는 또 하나의 감동 포인트를 찾았다.
김장하 선생에게 장학금을 받았지만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졸업생이 나왔다. 그에게 선생은 웃으며 "내가 그런 거를 바란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라고 했다.
김장하 선생은 티 내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을 알리거나 홍보하는 것에는 역정을 냈다고 한다.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아니다. 지식이 많아 존경을 받는 것도 어렵다. 모든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다. 나도 나이 들어 가지만, 진정한 어른의 모습인지는 항상 의문이다. 모두가 김장하 선생처럼 될 수 없다. 다만 삶의 어느 순간에서 한 번쯤은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누군가가 절실하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