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원래 빡신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영어표현은 selfish gene이다.
selfish를 '이기적'이라고 번역했는데 참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주체에 대한 주장이다. 살아남고 번성하는 것이 지상과제인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이기적이라는 표현이 억울할 것도 같다. 우리가 이기심이라고 부르는 행동의 근원이 자기 보존과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유전자의 생존과 복제를 위한 '생존 기계'로 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당위일 수 있다.
유전자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타적인 모든 행동도 사회 속에서 살아남고 인정받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똑똑하고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겉으로는 티 나지 않게 이렇게 행동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혼란 그 자체다.
내란을 일으킨 주범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여기에 동조하는 한 줌 세력들은 그들이 확보한 기득권을 무기로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능 없는 유전자의 본능적인 생존전략과 다름없다.
이기주의는 특별한 곳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일상 속에서도 크고 작은 이기심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마스크 미착용, 공공장소에서 무질서한 태도, 돈을 위해서라면 의리나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 키보드 악플러 등 일반적인 상식에서 이해하기 힘든 너무 많은 상황을 현실에서 목도한다. 어떻게 보면 현명하게 자기의 안위를 챙기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은 암묵적 경계가 있다.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가 함께 약속했던 공공의 경계는 무너지고 악귀와 혼란만이 있을 뿐이다.
성숙한 문명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힘센 자가 약자를 공격하지 않고, 부자가 빈자가 다투지 않으며, 젊은 이가 나이 든 사람을 공경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기의 이익가 상대의 이익이 항상 균형을 이룰 수는 없다. 복잡한 셈법이 있어야 함께 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유전자와 다르다.
유전자는 이기적인 전략으로 수 만년을 살아남았지만, 그렇게 부럽지는 않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내가 먼저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경계를 유지하면서 완충지역을 존중하는 관계는 자연발생이 불가능한 것일까? 이럴 때는 마음을 서로 내보이는 거울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역시, 인생은 다이내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