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디자인하는가?
디자인 가치를 증명하라
이 질문은 두 유형의 사람에게 해당된다.
하나는 디자인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디자인 수요자다. 디자인을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평소 이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아놔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직업적 디자이너나 디자인 전공자라면 막힘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명령에만 따르는 갈대처럼 여기저기로 흔들리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적어도 창의적 영역이라는 디자인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정리해 보자.
디자인은 제공자와 수요자로 나뉜다.
디자인 제공자는 직업 선택을 위한 기술로써 디자인을 하는 전문 디자이너가 여기에 속한다. 회사원이거나 사업자일 수 있다. 이런 디자인 제공자에게 디자인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다. 물론 누군가는 영리 활동을 위한 디자인보다 디자인의 가치와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디자이너들이 많으니 그럴 확률도 높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디자인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술이다. 많은 디자인 학부 전공자는 직업으로써의 디자인을 원한다. 시장에서 인기 좋은 디자인 영역은 늘 사람들이 몰린다. 이런 종류의 디자인 분야는 졸업 후 취업의 가능성도 높고 경제적 보상 확률도 높다. 직업적 안정성은 디자인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디자인 전공자에게는 첫 직업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 디자이너 아닌가. 학부 초기에 보편적인 디자인 공부를 하고 나면, 이후에는 관심 있는 세부 디자인 영역을 고른다. 학부에 개설된 세부 디자인 학과명이 첫 필터 역할을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시대 변화는 늘 새로움을 쫓아야 하는 긴장감을 갖게 한다. 디자인에도 이른바 돈 되는 분야가 있다. 대기업의 디자인 분야, 글로벌 차원에서 주목받는 기술과 연계되는 디자인 분야와 함께 안정적인 직업특성을 갖는 디자인 분야는 인기가 높은 것이 당연하다. 직업으로서의 디자인은 기술의 발전, 유행과 트렌드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디자인 수요자는 어떨까.
디자인 수요자는 전체 사람에서 디자이너를 뺀 차집합이다. 이들에게 디자인은 늘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 많은 도구처럼 디자인도 필요한 적시에 가져다 쓰면 되는 도구다. 다만 횟수와 비중,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도 중요한 요인이다. 디자인을 중요한 전략수단으로 쓰는지, 가끔 필요할 때만 가져다 쓰는지에 따라 디자인에 대한 가치부여 정도는 달라진다. 당연히 디자인 수요자는 디자인 수요가 있을 때 적절히 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치킨을 먹고 싶을 때를 생각해 보자. 누군가는 특정 브랜드만을 선호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닭이 거기서 거기라고 하면서 빨리 배달되는 저렴한 치킨을 원할 수도 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원하고 그에 따른 투자를 할 것이고, 일회성 수단으로 디자인을 생각한다면 그에 맞는 선택을 할 것이다. 모든 디자인의 수준이 다르고, 디자이너의 능력이 다르다. 같은 비용을 지불해도 예상과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비용대비 훌륭한 디자인 결과물을 얻기도 한다. 디자인 수요자와 디자이너의 만남도 결국은 사람 간 인연이다. 그래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운 비슷한 것도 작용한다. 코드가 맞거나 케미가 좋다는 식으로 표현되는 뭔가가 있다. 그렇다고 신점을 보라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디자인은 없어도 된다.
디자인이 없다고 해서 큰 일 나는 것도 아니다. 디자인이 없어도 제품도 만들어지고 서비스나 브랜드로 론칭된다. 하지만 디자인에 제대로 된 투자를 한다면 결과는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진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디자인을 하는 명분이 생긴다. 디자이너와 함께한 프로젝트가 디자인 없이 진행하던 것과 큰 변별력이 없다면 뭐 하러 예산을 들여서 디자인을 하겠는가? 그래서 디자인은 첫출발부터 달라야 한다. 공식적으로 디자인 파트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에서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디자인은 전체 프로젝트에서 1/n의 역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디자인은 프로젝트 전반에 관여해야 한다.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달라야 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설사 디자인 파트 의견이 프로젝트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야 한다. 그게 디자인의 의무다. 디자인의 첫출발은 차별화다. 프로젝트를 대하는 과점, 태도, 방식, 해결 등이 남달라야 한다. 남들과 같거나 유사한 수준이라면 디자인을 할 이유가 없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안이며 디자인의 첫출발이다.
디자인을 하는 이유는 천만 가지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맨 마지막 단계에서 살짝 리터치 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디자인에 대해 과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디자인 행위 자체가 너무 존귀하게 생각되어) 리터치 수준의 디자인이라도 존중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어불성설이다. 누구나 능력만큼 대우받아야 한다. 디자인도 그렇다. 디자인은 그 자체가 존중받아야 하는 행위가 아니다. 프로젝트가 디자인을 통해 차별화되고 결과물 또한 디자인에 의해 경쟁력이 생긴다면 충분히 존중받을 명분이 생긴다. 디자인의 가치는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 그리고 디자인을 선택한 디자인 수요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때 비로소 디자인은 존중받을 수 있다.
디자인의 가치는 디자인만이 증명해 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