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왈, 제대로 좀 하자
예(禮).
정말 좋은 개념이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너무나 빈번하게 곡해되어 사용된다. 특히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는 갑질의 명분으로도 쓰인다. 이럴 때는 예(禮)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직장 내에서 상사에 대한 처세, 학교에서 선생이나 교수에 대한 입장, 고질적인 나이갑질 등 사례를 찾아보는 것은 아주 쉽다. 예전에는 좋은 개념이었는데 현대로 오면서 바뀐 것일까, 아니면 입맛에 맞게 해석해 버린 것일까.
예(禮)의 대가는 뭐라고 했을까.
공자는 누가 뭐래도 예(禮)에 관해서는 최고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유사한 케이스를 당한 지라 한 번 찾아봤다. 꼰대, 갑질 같은 이 상황이 정말 제대로 된 예(禮)일까 의심했다. 공자는 기원전 6세기 중반에서 5세기 경 사람이다. 그가 주로 활동한 시기는 주 왕조의 중앙권력이 약화되고, 여러 제후국들이 각자 세력을 키우던 혼란기였다. 혼돈의 시대이니 더욱 예(禮)가 중요했을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여러 번 예(禮)를 언급했다.
팔일편(八佾篇)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정공이 이렇게 물었다. “君使臣,臣事君,如之何?”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
“군주가 신하를 예의로 대하면,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한다.” 답이 나왔다. 임금(윗사람)이 먼저 예로 신하(아랫사람)를 대해야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다. 공자가 살던 그 옛날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임금과 신하다. 회사의 상사와 부하직원, 선임과 후임, 교수와 학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양 극단에 있는 관계다.
공자는 예(禮)에는 명확한 순서가 있다고 했다.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면서 아랫사람을 예로 대하고 나면, 아랫사람이 충으로 윗사람을 대하는 순서가 정석이다. 이는 자칫 윗사람이 권위를 갖고 폭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리라. 윗사람이 먼저 예(禮)를 지키는 것이 조직 전체의 도덕과 질서를 유지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것은 또한 논어 안연(顏淵) 편에 나오는 유명한 공자의 말인 '君君臣臣父父子子'로 귀결된다. 그래야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된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은 명확한 상하관계지만 그럴수록 윗사람인 임금과 아버지가 먼저 예(禮)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하는 것이 예(禮)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예(禮)를 받고 나면, 이후에 하는 것이 충(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헛갈려한다. 권위를 가진 임금이, 아버지가, 상사가, 선생이 그렇게 한다. 이건 예(禮)가 아니다. 흔히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먼저 잘해야 한다”는 문화는 사실 공자의 맥락과는 반대다. 공자는 윗사람이 먼저 예를 갖추고, 그다음에 아랫사람이 충성으로 화답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권위와 지위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피곤한 갑질문화의 왜곡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더군다나 예(禮)의 창시자가 아주 오래전부터 경계해마지 않던 우려를 제대로 남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분통 터져할까.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 관계가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조직의 리더로, 선배로 제대로 된 존경을 받는 것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현상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글이 권위에 의한 갑질로 괴로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禮)를 제대로 모르고 자기 입맛에만 맞게 오용하는 중생들은 들으시라.
좀 제대로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