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깊이에 대해

디자이너는 좀 집요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

by 송기연

모든 영역에는 전문가가 존재한다.

전문가 중에서도 직업적 장점까지 포함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프로라고 부른다. 일반인에 비해 전문성은 가지고 있지만 프로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아마추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아마추어고 어디서부터 프로일까? 기준이 되는 명확한 선이 있을까? 이 정도 경험과 실력이면 프로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기준이 없다면 그 구분은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전문 영역마다 사람마다 그 기준이 조금씩 다른 것이 상식이다. 그렇다면 공통적으로 프로라고 불리는 사람 - 장인, 명장, 마스터 등 호칭은 다양하다 - 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통된 특성이 있지 않을까



깊이(Depth).

나는 그 차이가 깊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생각의 깊이가 전문성을 가른다. 특정한 대상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상식의 선은 깊이가 비슷비슷하다. 어떤 특정한 분야의 깊이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고민하고 사고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더라도, 특정한 주제와 지식, 기술에 대한 전문가의 깊이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본은 생각에 대한 깊이다. 예를 들어 의학분야 전문가는 의사와 간호사다. 이들은 일반 상식 수준을 넘는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보통사람도 기본적인 의학상식 정도는 있어서 가벼운 증상은 굳이 전문가가 없어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 가벼운 상처라고 생각되면 소독도 하고 연고나 일회용 밴드를 붙인다. 가벼운 근육통은 찜질이나 마사지를 하거나 소염진통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감기 초기증상 같으면 미지근한 물을 많이 마시고 쉬거나 종합감기약을 복용하면서 몸이 호전되기를 기대한다. 반면 심각한 상처나 질병이라는 판단이 서면 전문 의료인을 찾게 된다. 그래서 거기에 적합한 의학적 판단을 받고 합당한 의학처치와 치료를 받는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영역은 전문가의 몫이며, 여기에는 일반적 상식 수준의 의견은 들어갈 틈이 없다. 당연한 논리다. 어떤 분야도 모두 동일하다.


디자인은 어떨까.

디자인도 학위나 자격증 등으로 전문성을 증빙하는 객관적 장치가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디자인 경험은 전문가의 중요한 징표다. 그래서 같은 논리로 디자인 전문가 역시 생각의 깊이가 필요하다. 보통 사람의 상식이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될 내용에 대해 많은 고민과 사고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요즘 디자인계에서 많이 회자되는 이슈인 지속가능성, 디자인 주도, 디자인 문제, 시민 참여, 사용자 경험 같은 표현은 생각의 깊이에 의해 많은 차이가 생긴다. 자주 언급하는 디자인 문제는 그 문제가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문제인지, 목표인지 구분해야 한다. 그 문제 역시도 조금 깊이 들어가면 성격에 따라 심각한 정도, 해결이 필요한지, 개선이 필요한지, 장기적 관점의 문제인지, 단기적 해결이 필요한 문제인지 등으로 나뉘게 된다. 문제정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대상을 최대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결승점의 방향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대충 뛰어나간다면 노력은 하되,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얻지 못할 확률이 크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문제에 대해 파고들어 가냐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할 수도 있다. 그렇다. 일반적으로는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프로페셔널한 디자인 전문가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모든 사람이 충분하다고 해도 계속 사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사고하며 고민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특히 이런 집요한 성격을 타고나면 유리하다. 본성에 맞지 않는다면 이런 것 역시 강요처럼 인식될 수 있다.


이렇게 전문가는 구분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디자인 교육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