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속도

느리게 달릴 수있는 인생의 연륜

by 송기연

고요한 시간과 환경에서 글을 써보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보통 일상 속에서는 그런 상황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반복되는 일상의 패턴은 이런 시간을 호락호락 내어주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살기에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혼자만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시간을 만들 수 없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집이든 회사든 학교에서는 늘 누군가와 중첩되는 시간을 가진다. 일상을 한 번씩 벗어나는 경험은 그래서 소중하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그런 기회는 한 번씩 선물처럼 찾아온다. 나에게는 지금이 그런 선물 같은 시간이다. 이 글은 내일 화요일에 발행되겠지만 키보드로 글을 쓰고, 고치는 이 순간은 월요일 늦은 밤 11시 33분이며 장소는 집과 약 3시간 정도가 떨어진 출장지의 한 호텔방이다. 브런치 화면 너머에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Night of Sleep Jazz Piano 』란 이름의 클립이 플레이 중이다. 여기에 한 잔의 허브차까지 올라간 작은 호텔방 테이블 위에는 자유롭게 널브러진 자유로운 물건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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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생각의 속도는 한없이 느려진다.

평소 같으면 일상적이고 무의미한 어떤 행위를 할 것이다. TV, 유튜브 쇼츠 아니면 기껏해야 책을 보거나 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런 의무나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가 주어져 있다. 초저녁에 따뜻한 욕조의 물에 몸은 충분히 노곤해졌고, 쾌적한 온도에 더할 나위 없이 몸은 편한 상태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그래서 서피스를 켜고 브런치의 빈 페이지를 열었다. 상대성 이론처럼 호텔방에서의 저녁 시간은 더디게만 흐른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이 환경에 적응한다고 봐야 할지, 환경에 따라 간사하게 바뀐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산과 가까운 공원에 위치한 호텔의 시간은 하루가 빨리 마무리된다. 해가 지면 세상은 조용하게 내려앉는다. 이런 곳은 아마 해도 일찍 뜨겠지. 잠자리가 민감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부류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낯선 곳에서 잠을 자게 되면 집에서만큼 푹 잘 수 없다. 아무리 편한 잠자리도 익숙한 곳에서만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얼마간 여행을 다녀와도 집에 도착하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하고 안전한 감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이렇게까지나 차이가 날 지는 몰랐다.


생각은 깊이에 비례해서 속도가 느려진다.

단순한 생각보다는 깊고 넓은 사색은 느리지만 꾸준하고 화려하진 않아도 강하다. 지금은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 내 열 손가락에 의해 글로 만들어진다. 생각의 속도와 타이핑의 속도는 어떤 상관관계일까? 타이핑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나는 타이핑을 군대에서 배웠다.

군대에서는 안 되는 게 없다. 타이핑을 전혀 할 줄 몰랐던 이등병은 합법적인 폭력과 필요에 의해 상당히 빠른 시간에 높은 속도를 갖추게 된다. 그때에는 타이핑 속도에 연연했다. 1분 동안 칠 수 있는 글자의 수가 700타, 800타, 900타를 넘어 최대 1,000타까지 기록했었다. 처음에는 느리더라도 열 손가락을 모두 활용하는 타이핑은 일정 시간이 지나자 속도가 늘기 시작했다. 당시 손에 익은 타이핑 습관은 지금도 큰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생각에 따라 글자를 만들 수 있다. 머릿속 생각과 타이핑을 통한 글자의 생성은 거의 동시다발적이다. 생각해 보면 타이핑을 처음 배울 때 타자기로 시작한 것이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한 번이라도 타자기를 쳐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금 쓰는 부드러운 컴퓨터 키보드와 달리 타자기는 한 자, 한 자 정확하고 강하게 내리쳐야 겨우 글자가 종이에 찍힌다. 특히 자판의 중심에서 먼 새끼손가락이 담당하는 ㅂ이나 ㅁ같이 외곽에 존재하는 활자는 훨씬 더 큰 집중력과 힘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타자기는 컴퓨터와는 달리 별도의 Delet 기능이 없다. 한 자, 한 자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문서 한 장을 오타 없이 완성하기 어렵다. 글을 치고, 줄을 바꾸고 문서 한 장이 완성되는 데까지는 신체와 두뇌 여러 기능의 협업이 필요하다. 타자기로 배운 타이핑 실력은 컴퓨터 키보드로 대상이 바뀌어도 늘 시원한 타건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컴퓨터는 생각의 속도만큼이나 글자를 만들어 내고 수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생각의 속도는 타이핑에 비할 바 아니다. 생각은 타이핑이 생각을 실시간 표현한다고 하겠지만 속도차이는 엄청나다. 둘 사이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는 것이 타이핑 같다. 생각의 속도를 타이핑에 맞춘다면 조금은 정제된 생각의 속도를 가질 수 있다.


생각에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무조건 빠른 것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시속 30km/h 이하로 달려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 약속이다. 어떤 구간에서는 천천히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능숙한 운전자라면 이런 구간에 진입할 때 알아서 속도를 늦춘다. 빨리 달리는 것은 액셀을 강하게 밟으면 되지만 느리게 가는 것은 브레이크를 상황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운전의 베테랑이라면 느리게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생각도 늘 빨리 달리기를 강요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능숙한 운전자처럼 때론 느리고 깊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과 다른 환경에서는 이런 속도조절이 자연스럽다. 문제는 일상에서도 가끔 생각의 속도를 늦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다양한 순간에 모두 빠른 생각하기를 강요받는 것은 아닐까. 상황에 따라 빠른 생각보다는 느리고 깊은 생각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그걸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삶의 지혜와 인생의 연륜이다.



한 번씩 이런 순간은 너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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