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화폐가치가 많이 떨어진 요즘, 천 원은 예전 명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오백 원짜리 지폐가 동전으로 바뀌면서 천 원은 지폐의 최소기준이 되었다. 천 원의 행복을 말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20년 사이 200%가 오른 과자가격을 생각해 보면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편의점 500ml 생수 한 병이 950원이다. 갈증을 한 번 풀 수 있는 정도의 물 가격이 지금 천 원의 가치다. 물론, 더 비싼 물도 얼마든지 있다.
천 원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정말 와닿는 지금이다. 고만고만한 동네 음식점 메뉴판에는 음식가격의 첫 숫자를 바꾼 흔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편의점 작은 삼각김밥 정도가 천 원의 최고한계선이다. 이렇게 천 원으로 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점점 줄어드는 지금 누군가는 천 원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
이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소비자 가격이 천 원이면 원가는 얼마일까? 제조하는 기업은 통상 35%가 제조마진이다. 천 원이라면 350원으로 재료도 사고, 인건비도 주면서 각종 세금에 약간의 이익까지 남긴다. 그러다 보니 한 두 개 만들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대량으로 만들어서 대량으로 팔아야 기업이 유지된다. 나머지 650원은 제조 이후 유통이나 소매의 몫이다. 여기에도 물류, 유통, 홍보, 매장유지, 인건비에 약간의 이익이 남아야 한다. 일반 소비자가 지불하는 제품 가격인 천 원은 이렇게 다시 재분배된다. 예전에는 소비자 희망가격이라는 표현을 썼다. 제조사가 정한 가격에 왜 소비자를 끌어들였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긴 하다.
다이소에는 여전히 천 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많다.
산업디자이너로서는 아무래도 제품을 보면 원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정도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대량으로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다이소의 인프라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원의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기업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들 돈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이 없을까?
2025년 기준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 천 원짜리의 비율은 약 51% 정도라고 한다. 즉 전체 상품중에서 절반 이상이 천 원짜리라는 말이다. 여기에 다이소에서 약간 고급 상품군에 속하는 이천 원짜리까지 합치면 그 비율은 80%까지 올라간다. 티끌 모아 태산이 속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천 원, 이천 원짜리 제품으로 매출 4조 원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다이소다. 천 원의 가치를 몸소 증명하고 있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앞으로도 천 원의 가치는 조금씩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이소에서는 천 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의 수가 절반 정도다. 숫자로 따지면 약 15,000개 정도의 선택지가 있다는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여전히 우리 삶에는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제품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니. 물티슈, 건전지, 키틴타월, 볼펜 등 사무용품, 청소용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 실용성 높은 다양한 제품들이 천 원의 가격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천 원이 겨우 천 원일 수 있다.
하지만 다이소에서는 가격이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편리한 일상을 위한 작은 만족을 위한 천 원은 자체로도 충분이 가치가 있지 않을까?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금액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일지도 모른다. 아마 지금까지 다이소가 성장하는 동안 천 원의 가치를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겼기에 오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심오하고 거창한 철학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작지만 사소한 가치가 우리 삶에서 소중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소확행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다이소가 아닐까 싶다.
천 원의 행복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