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박사님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다이소 가는 길이에요"
내가 엊그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과 나눈 대화다.
아침 운동을 마친 후 사야 할 물건이 있어 다이소에 가는 길이었다. 마침 아는 사람을 만났고 그가 물어본 내 행선지를 말하는 이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대화는 아주 자연스럽다. 여기에 그 지인은 내 직업도 잘 알고, 평소 다이소를 좋아하는 성향을 잘 알기에 간단한 안부를 전하고 다시 제 갈길로 갔을 뿐이다.
대학 교수님이나 회사 대표님도 다이소를 갈까?
잘 생기고 예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MZ세대도 다이소의 고객일까?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엄청난 에너지를 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이는 내 지인들은 죄다 명품과 맛있는 음식이 일상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고, 일상은 행복에 겨워 보인다. SNS 밖 일상에서도 가성비 따위의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사람은 전체 인구의 약 10%라고 한다. 보이는 삶이 실제 생활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을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다.
다이소는 리얼 그 자체다.
SNS는 잔뜩 필터가 낀 가상의 세계와 비슷하다. 은근히 보이는 모습을 벗어난 삶은 우리와 별반 다름없다. 그래서 다이소를 간다고 남에게 말하는 것은 마치 화장 안 한 생얼을 보여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일 것이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혹은 몰랐으면 하는 내 진짜 생활 같아 보여서다. 하지만 한 번의 고해성사를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장점도 있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운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다이소 매장 안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좀 머뭇거려지는 게 있다.
나는 반갑고 자연스럽지만 상대는 어떨지 모르기 때문이다. 같이 운동하는 동생 중에 연예인처럼 잘 생긴 친구가 있다. 얼굴뿐만 아니라 운동도 잘해서 몸도 좋고 누구나 돌아볼 정도의 미남이다. 내가 다이소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보고 있을 때 그 친구를 발견하고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순간 놀란 그의 표정을 봤다. 같이 운동할 때의 그 편안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약간의 당혹감이라고 할까? 바로 간단한 인사를 하고 나는 몸을 돌려야 했다. 순간 그의 손에 들려있는 아크릴 수납함과 자질구레한 주방용품은 몬 본체 하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다이소 물건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눈치를 크게 보지 않아도, 다이소에서 구매하는 생활용품은 정제되지 않은 생활 그 자체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 극성인 초파리 포획을 위한 제품, 변기청소용 솔, 치간칫솔, 음식물 쓰레기 거름망 같은 것은 왠지 내 생활을 그대로 남에게 노출된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여기에 여성 1인 가구나 자취하는 대학생은 더할 수 있다. 원래 찐 생활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모델하우스는 깨끗하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실제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 아무리 좋은 인테리어 공간도 보통의 가정집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이소는 가성비의 상징이다.
아무리 비싸도 오천 원을 넘지 않는 물건들의 천국이다. 가성비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저렴, 더 나아가서는 궁색으로도 볼 수 있다. 적절한 가격이 아닌 저렴한 가격으로만 보면 다이소는 내가 갈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람은 이율배반적인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굳이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일부러 비싸게 줄 필요는 없다. 이런 점은 부자들이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지킨다. 내 친척 누님 한 분은 충분한 부가 있음에도 식탁에서 버려지는 생선가시 등을 담는 용도는 항상 전단지를 접어서 사용한다. 현명한 것 같은데 본인 말씀으로는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다이소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다.
다이소는 돈 없는 서민이 쓰는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인식은 이제 옛말이다. 오히려 다이소는 진짜 부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부의 기준이 있으며, 소비에 대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대명사가 되었다. 보통 다이소를 가면 여러 가지 물건을 구매한다.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제품도 있고, 눈여겨 두었다가 처음 사보는 제품도 많다. 계절별 상품도 많고, 흥미위주 제품이나 일회용 제품도 넘쳐난다. 생일이 되면 사용하는 나이표시용 숫자풍선은 다이소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정도다.
다이소는 이제 가격이 중요한 선택요인이 아니다.
가성비라는 말도 설득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기분이다. 온라인에는 포털 사이트가 있고, 시스템에는 플랫폼이 있듯이 다이소가 실제 삶에서는 그런 역할을 한다. 수많은 제품 속에서 내가 꼭 필요한 제품을 부담 없이 구매하고 써보는 경험을 다이소가 제공한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마음 편하게 누리면 된다.
다이소를 가는 이유는 필요에 의해서다.
가격이 좋은 조건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기발함이 다이소에는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 삶의 니즈를 발견하는 맛 역시 무시 못할 재미다. 실용과 재미, 이 2가지 가치를 다이소가 제공해 준다. 전문 디자이너로서가 아닌 생활인으로서도 다이소는 매력적인 장소다. 매일 새로운 여인을 만나는 기분과 비슷한 것 같다. 여자분들은 나를 아주 세심하게 챙겨주는 센스남 정도면 어떨까. 말한 것은 물론 말하지 않은 내 필요도 알아서 준비해 둔 다이소는 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다이소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