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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본 겉과 속이 같은 다이소

by 송기연

디자인은 무엇인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주요 대상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 우선이다. 이렇게 말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반발버튼이 눌려진다. 디자인은 절대 그런 하찮은 일이 아니다, 단순히 '겉'만 예쁘게 꾸미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치사한 행위라는 식으로 강변한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디자인의 가장 일차적 활동범위는 '속'이 아니라 '겉'인 것을.


아니, 그런데 눈치가 보여도 말은 똑바로 해보자. 도대체 '겉'을 아름답게 꾸민다는 게 그렇게 비윤리적인 일인가? 원래 '속(콘텐츠)'는 클라이언트의 몫이다. 그 '속'을 제대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디자인 아닌가. 어떻게? 이왕이면 '아름답게'!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조화, 균형, 비례, 절제, 리듬, 전이 등 온갖 조형능력을 다 발휘해도 될까 말 까다. '속'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겉'을 만드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능력이나 시간이 된다면 '속'의 영역으로도 슬쩍 디자인 범위에 넣을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고.


'겉'과 '속'이 다른 것은 본능적인 거부감이 생긴다.

왠지 정직하지 못하고, 치부를 숨기면서 사람을 속여먹으려 한다는 느낌이다. 맛있는 여름 대표과일인 수박에 대한 이미지가 이상한 이유로 나빠졌다. 아무튼 디자인은 특히 '겉'과 '속'이 중요한 요인이다. 둘 사이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형태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글로 적고 보니 참 디자인 하는 사람들이 왜 빨리 늙어가는지 알 것 같다. 이 타이밍에 거울도 한 번 보니.. 넘어가자.






디자이너의 관점이 뭐 대단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디자이너들은 모든 게 유니크하고 뭔가 별난 삶을 살 것 같지 않은가? 민머리에 수염도 기르고, 굵은 뿔테 안경에 멋들어진 옷과 액세서리. 하지만 디자이너도 생활인이다. 직업적 필요가 아닌 대부분 삶의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비슷하게 살아간다. 또 한편으로는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주관이 발휘되기도 한다. 다이소의 수많은 제품을 디자이너는 어떻게 바라볼까? 디자인에도 여러 영역이 있다. 특히 나는 산업디자인 - 제품디자인보다 조금 확대된 개념 - 전문가 관점에서 얘기를 풀어보고 싶다. 다이소 제품이 싸고 가성비만 좋은지, 아니면 굿디자인이라고 할 만한 요인이 숨어있는지 살펴보자.


굿디자인(Good Design).

아쉽게도 이건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1957년부터 일본 통상산업성이 주최하고 일본산업디자인진흥회가 주관한 이 디자인상은 우수한 디자인 상품에 주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일본의 제도를 벤치마킹해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최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에서 주관하면서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우수한 디자인 제품을 널리 알려서 디자인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대기업의 제품이나 디자인이 강조되는 중소기업 제품에 GD(Good Design)이 수여됐고 이는 마케팅에 유효하게 활용됐다. 생활제품 카테고리도 있으나 다이소 제품을 굿디자인 관점으로 바라본 기억은 없다. 아마 심사 대상에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도대체 굿디자인은 뭘까.


960px-GOOD_DESIGN_%EB%A7%88%ED%81%AC%EB%B3%80%EC%B2%9C%EC%82%AC.jpg 한국 GD(Good Design) 변천사



복잡하게 디자인 이론을 설명할 마음은 없다.

단순하게 다이소 제품군을 볼 때 디자인 관점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좋은 디자인은 '겉'이 우선 아름다워야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쁘면, 연인이나 부부끼리 싸워도 얼굴만 보면 풀린다고 하지 않은가. 여기에 인간성(속)까지 좋다면야 금상첨화다. 싸울 일도 애당초 없을 것이다.


아무튼, 디자인의 3대 구성요소는 심미성, 독창성, 합목적성이다.

이 정도를 상식으로 외우고 있으면 어디 가서라도 교양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순서는 중요도 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이 골고루 있으면 좋겠지만 한 두 개라도 강점이 있으면 된다. 다이소의 제품은 합목적성에 확실한 강점이 있다. 그렇다고 심미성이나 독창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저렴한 가격에 최적화된 미니멀 디자인, 그리고 사용성이라는 목적도 만족한다. 만약 가격이 저렴하지 못하면 다이소에 입점할 수 없고, 콤팩트하게 최적화된 미니멀 디자인이 아니면 제품 생산원가를 못 맞췄을 것이며, 사용성이 나빴으면 다시는 다이소에서 보기 어렵다. 엄청난 수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다이소 매대에 전시된다는 것은 이런 조건을 두루 만족했다는 증거다. 오직 그런 제품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기회를 얻는다. 진정 강한 자만이 살아을 수 있는 곳이 다이소인 셈이다.


유명한 미국 건축가인 루이스 설리번은 이런 말을 남겼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이 말은 디자인, 건축, 제조 영역에 큰 족적을 남겼다. 지금은 다양한 가치관이 나왔지만, 기능주의의 교과서적인 이 표현은 여전히 큰 힘이 있다. 애플의 디자인도 디터람스의 브라운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이런 미니멀한 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호감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디자인 사조가 있어왔고, 지금은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서두에 말한 미학적 관점이 좋은 예다.


assets%2Fe61abde79d954ddab2b6092044c4b5a1%2F13fc4ca0d5fa4d1e858702838a91a7a3 루이스 설리번(Louis H.Sullivan, 1856년 9월 3일 ~ 1924년 4월 14일)


다이소는 기능주의 디자인 사조의 대표 격이다.

좋은 기능주의 디자인은 사용자의 경험에 오류나 불편을 주지 않는다. 애플사의 제품에 이렇다 할 설명 매뉴얼이 없는 것이 그 예다. 다이소 제품은 단순히 저렴한 제품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최적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원가를 맞추기 위한 목적이 크겠지만 최소한의 재료사용, 대량생산을 통한 최적의 형태 등은 자연스럽게 최적의 제품을 만들어냈다. 디자인이 겉으로 현란하고 아름답게 드러내야 할 영역이 있고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야 하는 제품군이 있다. 자연스럽게 제품에 녹아있는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너머 좋은 경험을 선사해 준다.


다이소의 제품은 단순히 저렴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높은 품질기준이 적용되었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성능이나 품질이 엉망이면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한두 번 쓰고 망가지는 제품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저렴한 제품과 싸구려 제품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흔히들,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주장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대는 사람은 드물다. 디자인은 겉과 속을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다이소의 제품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철저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품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투명 아크릴 보관함은 공간효율을 극대화하는 구조설계를 품고 있고, 냉동밥을 위한 밀폐용기는 전자레인지 속 열과 압력을 고려한 개폐용 진공마개를 포함해서 출시되고 있다.


이제 다이소서 제품을 고를 때에는 가격만 보지 말자.

이 제품이 내 삶을 어떻게 더 편리하게 해 줄까라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모든 디자이너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강점이 있다. 겉과 속이 같은 제품을 찾는 디자이너로 자신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럼, 제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다이소 굿디자인템을 추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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