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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이 아니라 생활을 파는 곳

by 송기연

엉뚱한 상상은 늘 재미있다.


나는 한때 대형마트를 갈 때마다 여기에 갇히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상상했었다. 밖은 좀비들로 가득 차 있지만 문은 튼튼하고 안전하다. 여기에 전기는 아직 공급된다고 하면 1년은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냉동식품부터 먹고, 생존에 필요 없는 물건은 한쪽으로 치우고 등등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 상상인 줄 알았던 이런 설정은 영화 『새벽의 저주(2004)』에 그대로 나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설정이나 상황이 마구 뒤섞이면서 상상과 기억의 경계가 자주 희미해진다. 뭐 그러면 어떤가. 혼자만의 상상은 항상 새롭고 신선하지 않은가. 이런 상상은 뇌 건강에 좋다고 혼자 생각해 본다.


제목 없음.jpg 영화 『새벽의 저주(2004)』



아무튼 물건 많은 곳에 가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대형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다양한 제품을 보면 사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다. 아마 전통시장에서 어른들이 느꼈던 안정감 같은 것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창고형 대형마트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쌓여 있는 물건은 왠지 현실감이 떨어져 보인다. 눈과 가까이 있고, 내가 만질 수 있어야 풍족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다이소 제품의 종류는 약 3만 종이라고 한다.

많아도 너무 많다. 물론 제품이 모두 다른 것은 아니라고는 해도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보니 매장에 없는 물건도 많다. 아무리 큰 규모의 매장이라고 해도 모든 물건을 가지고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럴 때는 제품의 보유현황을 전용 어플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주로 가는 다이소 매장이 서너 개는 된다. 그리고 꼭 사야 할 아이템이 있다면 방문 전 미리 확인해 보기도 한다. 인기가 많은 제품은 품절도 될 수 있으니 SNS 사용후기에는 구매한 매장을 알려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3년 전쯤에 집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올리모델링 수준으로 진행했던 터라 기간이 한 달 가까이 걸렸다. 우리 가족은 나와 와이프, 딸 이렇게 3명이다.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임시로 있을 원룸을 하나 구했다. 대학가 근처라서 인프라도 좋고, 지하철도 바로 연결되는 곳이었다. 아주 필요한 생필품만 가지고 나왔고 나머지는 짐보관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냥 집에서 살 때는 몰랐는데, 의외로 자잘한 생활용품이 많이 필요했다. 해답은 다이소였다.


잠시동안 지내는 곳이었지만 있어야 할 물건의 종류는 많았다.

아침에 눈 뜨고 각자 밖으로 나갔다 저녁에 와서 잠만 자는 루틴이었지만, 칫솔, 비누케이스, 욕실 슬리퍼, 종이컵, 물티슈, 주방세제 등 한 번 다이소를 갔다 오면 한가득 물건을 사 왔다. 물론, 모든 구매품목의 결정은 여자의 몫이다. 남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이 필요할지 생각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변명을 해본다.


혹시 자취를 하게 되는 청년들에게 다이소는 아주 좋은 해결책이다.

살면서 필요한 제품의 수는 생각보다 많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효율적인가. 우리는 그나마 기본살림살이가 갖춰진 원룸에 들어갔고, 기본적인 가재도구는 가지고 왔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춰야 하는 자취생들은 또 다른 문제다. 주방, 욕실, 리빙 쪽 제품을 보면 종류의 많음에 놀라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이런 종류 제품 하나씩을 가지고 있음에 또 한 번 더 놀란다. 우리가 '묵은 살림'이라고 표현되는 온갖 종류의 제품들은 이사를 하면 알 수 있다. 정말 끝없이 어디에선가 물건들이 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다이소에서 파는 것은 그냥 생활 자체다.

생활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제품부터 있으면 좋은 제품까지 다양하게 있다.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결정은 그 사람의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과 동의어다. 요리에 진심인 사람은 다양한 다이소의 주방 아이템으로 입문할 것이고, 식물을 기르거나 손으로 뭔가 만들거나 수리하기 위해서는 공구코너로 가면 된다. 누군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삶의 포인트를 위해서, 또 누군가는 실제 필요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 다이소에 간다.


내가 구매한 다이소 제품은 내 생활이 된다.

오늘 내 손에 들어온 투명홀더는 사무실에서 출력한 기획서를 보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함께 구매한 실리콘 운동화끈은 깔끔한 중년아저씨 패션에 양념 하나를 더한다. 이렇게 다이소는 우리 삶에 은근히 스며들어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MS의 서피스 프로에 외장하드를 연결하는 케이블은 다이소에서 산 것이다. 지금 내 삶도 둘러보면 하다못해 TV 리모컨 건전지 하나 정도는 다이소 제품이 있을 것이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꼭 필요한 구석구석에 다이소의 흔적이 있다.



"일상이 다이소가 되다"


다이소 홈페이지에 있는 문장이다.

자연스럽게 다이소 제품을 사용하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이게 또 나름의 매력이 있다. 일본 무인양품 같은 느낌도 있고, 왠지 싸고 저렴한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리얼한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는 정말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 카피문구는 참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2.jpg 다이소 홈페이지 (https://www.daiso.co.kr) 인트로 화면


다이소가 파는 것은 천 원짜리 생필품이지만, 이게 곧 우리의 삶이 아닐까.

너무 철학적인 것 같지만, 내 진짜 모습은 화려하게 포장된 겉모습보다는 숨겨져 있는 내면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하루하루가 모여서 전체 삶이 되듯, 내 삶을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할을 해주고 있는 보잘것없이 보이는 작은 제품 하나도 소중하다.


그리고, 폼나지 않는 궂은 역할을 다이소가 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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