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좋은 친구

by 송기연

MBC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가족, 친구, 동료, 선·후배, 다양한 종류의 가깝고도 먼 지인들과 함께 부대낀다. 그러다 보면 몇몇 그룹으로 묶이게 된다. 학교, 직장, 팀, 모임 등 지속력이 큰 것부터 그냥 가벼운 모임까지 다양하다. 그 속에는 어떤 역할이 부여되는데 이럴 때 묘한 기대감이 생긴다. 여기에서 인간관계의 갈등과 집착이 발생한다.


사람에게 실망한 적이 많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일방적으로 그 사람에게 기대한 바가 있어서일 것이다. 친구로, 동료로서, 가족으로서 어떤 기대가 내 마음속에 생기면 그것이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아주 실망을 해 버린다.


"그 사람은 어쩌면 그럴 수가 있지?"


pexels-keira-burton-6624318.jpg 아오, 나한테 왜 이러는겨!


그렇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냐는 말인가. 그런 종류의 대화를 하거나 들으면 그 대화의 원인 제공자는 정말 천하의 나쁜 사람이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이해타산으로 똘똘 뭉쳤다. 아주 권위적이고 불합리하며 도덕성이나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 그랬을까 싶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방금 기술한 저 모든 것에 해당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


명확한 기준이 생기면 편한 면도 있지만 피곤하다.

모든 가치와 관점이 고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는 그런 기대를 애써 하지 않기로 했다. 친구라면, 동료라면, 선배나 후배라면이라는 식으로 "자격"을 부여하면 그에 따른 "의무"나 "책임이 그 사람에게 부여됐다. 물론, 상대는 내가 부여한 이런 자격을 알 리가 없다.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내가 임의로 부여한 기준이다. 하지만 그 기준을 만들지 않은 시점부터 사람 간의 관계는 한결 편해졌다.


나에게 그 기준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기대가 없다 보니 실망할 일도 줄었다. 섭섭하게 생각되는 말이나 행동도 함께 줄어갔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성인군자는 아니다. 그냥 나 하나 마음 편하자고 한 생각이지만 이거 나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찌 보면 참 냉정하다는 말도 듣겠지만 모든 관계를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가족이든 동료든 선배나 후배, 일이나 취미 등 나와 조금이라도 얽혀 있는 관계는 가볍고 기대를 하지 않는다. 즉, 그들에게 그 어떤 자격이나 역할, 의무, 책임등의 기준을 주지 않기로.


그냥 만나면 좋은 친구.

이 표현이 딱 맞다. 만나면 좋고, 안 만나거나 못 만나면 그건 또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사실 살아가다 보면 얼마나 신경 쓸 데가 많고 스트레스가 많은가. 각자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고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우주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어쩌다 가끔 만나게 되면 좋지 않은가. 물론, 깊은 인간관계나 감정을 나눌 수는 있지만 절대 어떤 형태로든 기대나 역할을 부여하는 의미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MBC도 그런 의미의 로고송이었을까.


https://youtu.be/hsQN1GpaNZI?si=R28qfiDAqzynxEv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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