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다.
깊은 의미를 떠나서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산업이 발달되기 전에 그러니까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가던 교과서에나 나오는 시대에야 이런 개념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른바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는 상황이라면 생산자와 판매자를 이어주는, 정보를 전달하는 이런 역할은 없어도 된다. 마치 맛집 하나에는 대기번호까지 받으면서 줄을 서는데, 바로 옆에 있는 동일 업종의 식당에는 애써 찾아가지 않는 이치와도 유사하다. 출퇴근 길에 있는 칼국수집이 그렇다. 내 입맛에는 다 같은 칼국수인데, 유독 한 군데는 손님이 연중 대기 중이고, 바로 옆 칼국수집은 파리만 날린다.
만들기만 해도 팔려나가던 시대가 진짜 있기는 했을까.
아무리 제조업 초기라고 해도 그런 시기는 있어도 아주 잠깐이지 않았을까 싶다. 전쟁이나 기아 등 어쩔 수 없는 외부요인이라면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적인 상황이라면 어쨌든 선택지는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유사한 경쟁 제조사가 나오기 시작하면 얼마 안 가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다. 그러면, 이제 선택의 순간이다.
대체적으로 제조자는 표현하는 힘이 부족하다.
제조 전문가는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 선보이기 전까지 만들고 다듬는 일을 전담한다. 그러다 보니 전적으로 많은 역량을 제조, 개발에 두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품질도 포함된다. 그러니 이제는 하나의 전문영역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마케팅까지 함께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제조나 개발 영역이 발전하는 만큼 다른 분야, 마케팅 분야 역시 성장하고 발전한다. 두 마리, 세 마리 토끼를 직접 잡을 수는 없다. 최대한 두 마리, 세 마리 토끼를 바라보고 생각 정도는 할 수 있다. 마케팅까지 고려한 제조와 개발을 하는 것이지, 마케팅까지 직접 하는 전 단계로 제조와 개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규모가 크지 않은 스타트업에서는 동시에 두 가지, 세 가지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회사 규모나 여유 자금이 생기면 분야 별 전문직원이나 전담 직원을 두는 이유가 다 있다.
마케팅은 제조자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이건 채널, 형식, 전략 등의 주요 판단요인이 외부에 많다.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자와 시장상황, 고객 트렌드 등을 고려해서 운영해야 한다. 주로 제조자들은 자신의 콘텐츠인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에 한정해서 포커스를 맞춘다. 하지만, 마케팅은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간다. 아니 그래야 한다. 아무리 생얼이 예쁜 여성이라도 전문가의 메이크업이나 헤어 등을 거치면 그 차이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콘텐츠의 가치를 꾸민다는 것이 거짓이나 부풀린다는 것이 아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고객에게 정확하고 잘 전달하기 위한 약간의 테크닉이나 전술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늘은 자기 홍보의 시대다.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한 채널에서 흘러넘치는 공급자 간의 피나는 전쟁이 벌어진다. 제조는 마케팅을, 마케팅은 제조를 대할 때 일이 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두 영역 모두 갈수록 치열해져 가는 레드오션에서 피 튀기는 경쟁일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또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아무리 마케팅 전문가라고 해도 제품이나 서비스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 반대로, 최고의 개발과 제조 전문가라고 해도 마케팅 수립에 따른 전략수립 없이는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제조와 마케팅은 함께 가야 한다.
특히, 디자인경영에서 마케팅의 역할은 정확한 콘텐츠의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 정확하게 고객에게 전달되는 제품의 성능, 이미지, 가치는 고객의 구매심리를 자극한다. 고객을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 마케팅이고 제품의 역할은 이후다. 초기에 형성된 마케팅에서의 제품 이미지와 성능은 기대대로, 아니 그 이상 실제로 경험할 때 구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품과 마케팅이 따로따로 노는 셈이 된다. 기업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고객은 떠나간다.
제품과 마케팅은 따로, 또 같이 개념이다.
누가 하나 너무 앞서거나 따로 놀거나 해서는 안 된다. 제품이나 서비스 즉 콘텐츠는 마케팅과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두 개의 영혼을 가진 한 몸처럼 존재해야 비로소 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긴다. 아니, 일단 고객에게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 그다음은 고객의 몫이다. 우리의 역할은 그 과정에서 정확하게 전달된 우리 제품을 고객에게 인지시키고 구매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후는 고객의 몫이다.
우리의 제품이 고객에게 닿는 그 여정이 제조와 마케팅의 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