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모르고 싶어서 } 1화

정리 컨설턴트 니키의 얄궂은 하루

by 슴샥

저게 십 미터야... 이십 미터야...


하늘 높이 걸린 네모 천창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쓰는 니키.


그녀의 갈색 단발머리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흰 셔츠 속으로 스며든다.


말이 창고지 온실이었다. 외장재라고는 모조리 유리인 데다,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닫혀있었다. 들이치는 태양볕 덕분일까. 칠월의 후덥 축축한 공기가 이 거대한 공간 전체를 찍어 누르는 기분이었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딴 의뢰, 애초에 수락을 하는 게 아니었어! 전원주택인지 뭔지, 부지만 이천 평이 넘는다고 자랑을 할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구!'


하지만 거절할 수 있었을까? 창고 정리라는, 실로 간단하게 들리는 의뢰인 데다, 의뢰인인 모교수로 말할 것 같으면 방송에 뻔질나게 얼굴을 내비치는 샐럽 아닌가. 그 창고란 장소가 이런 초대형 규모 온실이라는 얘기를 사전에 미리 들었더라면 또 모를까. 거절은 어려웠으리라.


니키의 새빨간 하이힐이 비틀댄다. 차곡차곡, 최소 십 미터 높이쯤 쌓여있는 상자들을 보니 현기증이 일었다.


상자가 꼭 장벽 같았다.


베를린 살 적에 신물 나게 보았던, 베를린 장벽.


자꾸 그 장벽이 떠올라 이곳이 경기도 외곽의 전원주택인지, 베를린 시내 어디쯤인지조차 헷갈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더워 디지겠는데, 이놈의 고물 휴대폰은 왜 또 말을 안 들어 처먹는 거니...'


애먼 휴대폰에 대고 내뿜은 짜증은 결국, 흙바닥에 철퍼덕! 아무렇게나 주저앉는 것으로 끝이 난다.


무심코 욕을 하고 말았다. 그동안 그녀를 스쳐갔던 의뢰인들 전부를 싸잡아서.


'망할 놈들 같으니라구. 감당도 못할 양의 물건을 뭘 그렇게 사들여? 하고많은 선택지들 가운데 왜 하필 '소유'를 택하느냔 말이야.'


라고서.


틀린 말이 아니다. 항상 이 모양이었다.


정리 컨설팅 의뢰를 받고 현장에 와보면 물건의 쓰나미였다.


단순히 버리기를 주저한다는 설명으론 부족했다.


정리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물건 대하는 태도는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전혀 달랐으니까.


일종의 집착이랄까. 살 땐 쉽게 샀는데 전혀 버리지를 못했다. 물건을 버렸다간 천벌이라도 받을 것처럼.


정리 컨설턴트라는 자신의 직업에 새삼 환멸을 느끼며, 그러나 계산을 시작하는 그녀.


눈대중으로 온실의 평수를 어림잡는다.


'오백 평? 아님 천 평? 설마, 천 오백 평?... 까, 깜짝이야! 이게 뭔 소리야!'


우당탕 탕탕탕 탕탕탕탕......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났고, 십여 미터 거리에 종이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꼭대기에서부터 굴러 떨어진 모양인데, 어지간히도 박살이 났다. 상자 주변에 누- 렇게 흙먼지가 피어날 정도로.


온갖 물건들이, 꼴랑 종이상자 하나가 토해낸 잡동사니들이 땅바닥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어머, 저게 다 뭐야? 주판? 저거 주판 맞지? 엄마집에 있는 그 주판 말이야. 그 옆에 건... 천상 타자기 같아 보이고... 저 잡지책은 또 뭐니? 빛이 바래다 못해 색깔이 아주 똥색이네? 대체 어느 시대 물건이길래...'


몸을 일으키려 엉거주춤, 그러다 되려 주저앉아버리는 니키.


웃음이 터지고 만다.


눈은 안 웃는데, 입만 웃는, 반쪽짜리 웃음. 허탈한 나머지 헛웃음이 나는 모양이었다.


상자가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장벽에서 이가 하나 빠진 듯 빈 공간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빈 공간 너머로 또 다른 레이어가, 그러니까 다른 상자들이 잔뜩 보였다.


상자로 장벽을, 그것도 심지어 겹겹이 쌓아둔 모양이었다.


"이거 완전 똥 밟았네. 저 망할놈의 종이상자가 여기 도대체 몇 개나 들어앉아있단 소리야? 수거트럭 한 대 부르는 걸로는 어림도 없겠는데?"


혼잣말을 주절거리던 그녀의 단발머리가 움찔, 그러다 몸 전체가 움칫, 반응을 한다.


"저거 뭐야???... 인체... 모형???..."


상자가 쌓여 만들어진 장벽 앞에 인체 모형 하나가 서있었다.


학교 다닐 때 과학실에서 본 인체 모형.


의사 가운을 입혀둔 형태의. 저렇게나 활발하게 눈을 깜박이고 있는... 잠깐. 눈을 깜박거린다고?


다음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휴대폰 케이스에 꽂혀있던 그녀의 명함 또한 흐트러져버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구고 만 것이었다.


인체 모형 따위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백발의 노인. 빛바랜 의사 가운을 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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