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모르고 싶어서 } 2화

정리 컨설턴트 니키의 얄궂은 하루

by 슴샥

노인치고는 자세가 꼿꼿했다.


비록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노인의 맨발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목에 걸린 목걸이가, 힙합 가수가 차고 다닐 법한 금메달이, 영어 알파벳 'Q'가 큼지막하게 박힌 메달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누, 누구세요?" "누, 누구냐니까요, 할아버지!"


그렇게 소리치는 건 니키 혼자였고, Q는 ( Q 목걸이를 목에 건 할아버지 )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한 걸음, 두 걸음, 묵묵히 걸음을 옮겼을 뿐.


가뜩이나 치켜 올라간 니키의 눈꼬리가 더욱 올라가며 도끼눈이 된다. 가지고 온 가방을 힘껏 끌어안는다.


일명 출장가방. 취직 기념으로 큰맘 먹고 마련한, 짝퉁 루이뷔통. 태블릿이며 화장품 파우치, 가위, 계산기, 또 뭐였더라. 아무튼 이것저것 들어있는터라 상당히 무거웠다. 키가 180 가까이 되는 그녀가 그 가방으로 풀스윙을 날린다면, 저런 노인쯤 얼마든지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그런데...


"형법 제319조. 주거 침입죄.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혹은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퇴거요구를 받았음에도 응하지 아니한 자 역시, 형은 동일하다."


라고, 가래 끓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Q 가 입을 연 것이었다. 시커먼 데다 검버섯 가득한 얼굴을 씰룩이면서.


"네? 주, 주거 침입죄요?"


"암. 면식도 없는 자가 허락도 없이 침입했단 소릴 법적용어로 바꾼게지. 어디 침입만 했나? 자네는 여차하면 사람을 죽일 작정으로 무기까지 준비했지 않은가."


"죽이다뇨? 지금 누가 누굴..."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자네 그 큼지막한 가방, 무게가 상당해 보이는데, 그걸로 나 같은 늙은이를 후려갈기기라도 한다면야."


"저기요, 할아버지."


"형법 제320조. 특수주거침입죄.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주거침입죄를 범한 경우에 해당한다. 형법 제284조.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협박을 범한 경우... 가만. 다른 것도 해당이 되겠어. 특수폭행이라던지."


"자, 잠깐만요! 전 어디까지나 의뢰를 받고 온 거라고요!"


"의뢰?"


"그렇다니까요. 이 온실 주인분, 아, 온실이 아니라 이 창고 주인분 말이에요. 모교수님요. 그분이 콕찝어서 저한테 의뢰를 하셨다고요. 여행에서 돌아오시기 전까지, 창고 정리 좀 부탁한다고."


“음... 의뢰라..."


"요즘은 다들 그렇게들 하세요. 정리할 물건은 산더미인데, 시간 여유가 없는 분들은 저 같은 정리 컨설턴트를 고용하시거든요."


"뭣이라? 정리, 뭐시기?"


"정리 컨설턴트요. 생긴지 얼마 안 되는 직업이죠. 정리에 곤란을 겪으시는 분들이 정리작업을 의뢰하시면, 제가, 아니 저희 팀이, 그러니까 저희 회사에서..."


갑자기 말을 더듬는 니키.


Q의 돌발행동 때문이었다.


키가 그녀보다 서너 뼘은 작은 그가 시야에서 잽싸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몸을 수그렸다 편 것이었다.


명함을 주운 모양이었다. 그녀가 휴대폰을 떨어뜨리는 통에 바닥으로 흩어졌던 명함들 중 하나를.


말라비틀어진 낙엽 같은 Q의 손이 그녀의 명함을 쥔 채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그러더니,


"자네는 외국인인가?"


라는 황당한 질문이 날아든다.


"외국인이요? 제가 어딜 봐서 외국인이에요?"


"한국인 성씨 중에 '니' 씨가 다 있나 해서 묻는 걸세."


"지금 그거, 할아버지 시대때 유행하던 게그인가요? 아님, '니키'라는 이름을 진짜 처음 들으시는 건가요?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흐음... 니키가 자네 진짜 이름이라고..."


"저 베를린에서 유학했거든요. 그때 사용하던 이름 그냥 계속 쓰는 거예요. 이제와 바꾸기도 뭐해서."


"클래식 전공이겠구먼. 독일에서 유학을 했다면."


"전 사회학 전공인데요. 독일에서 박사까지 마쳤고요."


"이거, 고학력 백수로구만."


"네?"


"독일에서 박사씩이나 했으니 고학력이 맞고, 보나 마나 비정규직일 테니, 백수라 불러도 무방하겠지."


"그거 설마, 제 얘긴가요?"


"눈에 훤하구먼. 유학에서 돌아는 왔는데, 취직을 못해 빌빌거리다 지인찬스나 썼겠지."


"지인찬스요? 그딴 단어는 또 어디서 주워들으셔서는..."


"정리 컨설팅인지 뭔지 하는 회사는 자네 지인 중 누군가 운영하는 회사일 것이고."


할 말을 잃은 니키.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Q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으므로.


"자유를 중요시하는 성격인가? 그래서 '니키'라는 이름을 사용한 겐가? 니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지. 자유를 상징하는."


"할아버지가 저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세요? 저요, 정규직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이번 의뢰만 잘 마치면, 바로 정규직 전환이라구요."


"이것들이랑 비슷하구먼."


"뭐라구욧?"


"여기 이 물건들. 자네랑 비슷한 처지란 소릴세. 전부 쓸만한 물건들인데, 써주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처박혀있지 않은가. 정규직은 얼어 죽을. 실컷 쓰다가 버려버리면 그만인 것을."


"이보세요, 할아버지!"


"쓸만하겠다 싶었음, 뭐 하러 이제껏 비정규직으로 썼겠나? 처음부터 정규직을 시켜줬겠지. 하여간 요즘 것들은 통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니까. 사람이고 물건이고, 대강대강 쓰다가 필요 없어지면 냅다 갖다 버리는게지. 그러니 세상이 요 모양 요꼴이지. 소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을. 요즘 것들은 그 책임이란 걸 도통 지려 들지 않는다니까."


"으악!"


니키의 입에서 저절로 악소리가 났다. 예고도 없이 무언가가 쏟아져내렸으므로.


물건이었다.


Q 가 장벽을, 상자로 쌓은 저 거대한 벽을 멋대로 건드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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