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블루홀 } 2화

리버... 나의, 다이빙 선생님

by 슴샥

리버.


나의 다이빙 선생님.


모두 그를 리버라 불렀다.


인생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냈던 나와는 다르게, 생의 많은 날들을 영국에서 보냈다는 남자. 영국 국적의 한국인.


그가 어쩌다 이집트 다합의 다이빙 센터에서 다이빙을 가르치고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20년 전의 다합은 그야말로 다이버들의 성지였으니까. 한 달짜리 비자가 만료되기 직전 근처 이스라엘로 나갔다 들어오는 편법을 일삼는 장기체류자가 태반이었을 정도로.


다이빙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가르쳐주겠다는 사람들 역시도 수두룩했다.


그 하고많은 다이빙 강사들 중 결국 나는 그에게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다.


기왕 오래 머무를 거, 블루홀에나 들어가 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이켜보면 그 시기가, 그 여름이, 인생 통틀어 물을 가장 많이 접한 시기였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바다보다는 산. 수영보다는 달리기.


그런 사람이 나였던지라 물속은 상당히 생소했고,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서툴렀다. 달랑 일주일 배우고 어드밴스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뜨내기 관광객들도 부지기수였건만. 내 경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흘 넘게 배웠음에도 다이빙슈트조차 혼자 입고벗고가 마음대로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말끝마다 블루홀, 블루홀, 노랠 불러댔다. 하루빨리 블루홀에 들어가고픈 욕심에.


뭐, 부러운 건 사실이었으니까.


어디라더라? 숙소에서 멀지 않은 장소였는데.


'캐년'이라 불린다는 바닷속 협곡. 그곳 입구를 생초보 다이버들이 탐험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약이 바싹 올라버렸다. 내 입에서 조건반사처럼 신세한탄이 불거져 나왔고, 거의 동시에 한숨이 화살이 되어 날아갔다.

고작 10 미터, 20 미터 깊이의 바닷속만 걸어 다니다가 비자가 만료될 지경이라고, 선생이 워낙에 못 가르치니 진도가 안 나가는 거라고, 아예 대놓고 리버를 원망했었다.


하지만, 내 예의 없는 행동에도 언짢은 기색조차 않는 그였다.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시비를 걸어온들 문제 삼지 않는 성격이랄까.


나라는 사람이 세상을,


[ 싫은 것들 vs 더 싫은 것들 ]


이 둘의 조합으로 나눈다고 한다면,


그에게 있어 세상은 좋은 것들과 더 좋은 것들의 집합이었다.


그런 성격 좋은 그가 딱 한 번,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내가 수면을 박차고 튀어 오른 직후였던가.


물벼락이 날아들었다.


"사랑! 내 말 못 알아들었어? 벌써 몇 번이나 경고했을 텐데! 그런 빠른 속도로 올라가선 절대로 안된다고!"


그 말과 함께 리버의 손이 또 한 번 수면을 강하게 내리쳤다.


어찌나 세게 치는지 그의 주먹이 부서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못난 수강생이라 죄송하다 사과라도 했더라면 좋았으련만.


그 당시의 내가 내뱉을 수 있었던 유일한 단어는 '쉬익' 뿐이었던지라...


어떻게 된 일인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들이키는대도 들어가지 않고 튕겨 나왔다.


호흡곤란이 와버린 것이었다.


마치 천식을 심하게 앓는 사람처럼 쉬이이익 -


말만 하려 하면 입 끝에서 희한하게 '쉬익- 쉬익-' 하는 쇳소리만 났다.


리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장면이 내 눈앞을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 마치 제멋대로 내달리는 나의 호흡을, 브레이크라도 걸었다간 영영 멈출 것 만 같은 내 숨을, 기필코 붙잡아 두겠다는 듯 - 강하게 와락, 움켜쥐는 장면 또한 뒤따랐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 / /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물가에 도착해 있었다.


모래판에 움푹, 엉덩이 자국이 남을 정도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주저앉는 줄도 모르고는.


"수십 번도 넘게 설명했는데! 산소통에 든 압축공기, 혈액 속으로 녹아드는 거라고! 그걸 공기방울로 배출시키려면, 최대한 느린 속도로 올라와야 된다고!... 내 말 듣고 있어, 사랑?"


그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져 있었다. 그러다,


"그 공기방울... 당신 머릿속에서 터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라는 부분에서는 몹시 떨렸다. 듣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죽. 겠. 죠."


하고 내가 끼어들었던 것 같은데.


의외였다.


그런 표정이라니.


죽는다는 단어에 대한 그의 반응은 뭐랄까, 슬퍼하는 것에 가까웠다.


아니, 분명 슬퍼하는 눈빛이었다.


장담한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런 속도로 올라왔다고?"


하는 말을 내뱉으며, 그는 못내 슬퍼했다.


내게로 향하는 시선을 거둘 줄을 몰랐다. 단 한 차례도.


멋쩍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귀를 만지작거렸던 것 같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 줄은 예상 못하고는.


내 귀에 이상이 생겼다 여긴 모양이었다.


/ / /


그날은 해가 저물도록 모래판에 남아있었다.


우리 둘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걸 보면서 다른 다이버들이 빈정거렸다.


저 수강생, 다이빙에는 영 소질이 없어 보이는데, 그냥 스노클링이나 하다 돌아가는 게 맞지 않겠느냐는, 뭐, 그런 말들.


흘러 넘길 수 있었다. 남들 이야기보다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 그게 백배 천배는 중요했으니까.


머릿속을, 혹은 가슴속을, 아니면 허공을, 좌우지간 울리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내가 나 자신에게 외치고 있었다.


'그를 좋아하나 봐!'


라고.


리버...


나의 다이빙 선생님.


이미 그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틀림없었다.


그때 그 목소리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그가 내미는 손을 붙잡으며 얼굴을 붉혔던 장면이 통째로 내 영혼에 새겨져 버린 것만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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