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블루홀 } 4화

사막여우

by 슴샥

지프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사막이라니.


익히 들어왔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이 지척이라는 둥, 사람들 경험담. 들어는 왔으나, 실제로 사막을 헤매고 다니게 될 줄이야!


뜻밖이었다.


알리시아의 사망소식을 접한 이후로 줄곧 우울해했던 리버.


그렇다고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사막으로 직행이라고?


당황스러웠다.


리버가 모는 지프 조수석에 엉겁결에 올라탈 때까지만 해도, 기분전환 겸 드라이브를 나가는 줄 알았으니까.


게다가 그 사막이란 장소, 내가 상상했던 고운 모래벌판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합 일대의 사막은 아라비아 사막과는 결이 다른, 암석의 사막이었다.


사막의 태양. 사막의 바위. 사막의 먼지.

그 먼지와 바위와 태양에 갇혀 길을 잃을 것만 같은 불안감.


덜컥 겁이 났다.


길도 없는 곳을 뭐 하러 헤매고 다니느냐, 다그쳤더니만,


"걱정은 왜 하는 거지? 가는 곳이 길이다 생각하면 그만인걸."


따위의, 한가한 소리나 해대는 그였다.


불안이 널뛰기를 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순간, 농담처럼 사이드미러 바로 옆에서 연기가...


지프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시동이 꺼져버렸다.


그런데도 리버는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어깨를 한 번 으쓱, 움직이는 것이 전부였지.


"할 줄 아는 거죠? 자동차 수리?"


나의 다그침에,


"알아서 해결되겠지. 시간이 지나면."


라면서 되려 태연한 표정을 지었고, 나의 불안감을 극에 달하게 만들었다. 고함을 지르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알아서 해결되다니? 말 똑바로 해요. 엔진 고칠 줄 알아요, 몰라요?”


"쌩쌩해지는 걸... 조금 식기를 기다린 다음에 시동 걸면..."


"그럼, 가만히 앉아 엔진이 식기나 기다리겠단 소리예요? 그게 언젠데?"


"..."


"아, 언제냐고!"


"..."


어스름이 눈에 띄게 짙어졌다.


당장이라도 밤이 찾아올 기세였다.


/ / /


달 없는 밤엔 별이 대장이라더니.

이보다 별 많은 곳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늘에 별이 많기도 많았다.

목이 꺾일듯한 자세로 별을 세기 바빴던 나. 그에 반해 분주한 리버. 바닥에 침낭을 펼친 것으로 보아, 몸을 집어넣을 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자동차 수리는 않을 작정이냐, 이러다 영영 못 돌아가면 어쩔 거냐, 걱정에 또 걱정. 그런 나와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라는, 맥 빠지는 소리 이외에는 걱정하는 기색도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는지라 지프에서 침낭을 꺼내와 적당히 근처에 펴고 누웠다.

뭐, 근처라는 표현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었지만.

그의 침낭과 내 침낭의 거리가 한 뼘도 채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우 같은데..."

하면서, 침낭에서 빠져나온 그의 손가락이 지평선 먼 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만, 맥이 풀려버린 나.


침낭에 몸을 간신히 구겨 넣은 상태로 긴장해 있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여우 얘기라니!


참고 듣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짜증스럽게 쏘아댔다.


"이봐요, 리버! 지금 여우가 문제예요? 이 상황 이거, 안 보여요? 이 근처에 지금 돌이랑 바위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구요. 마을도 없지, 지나가는 차도 없지, 전화도 없지... 차 못 고치면 도대체 어쩔 거냐구. 다합에 연락할 방법이라고는 없단 뜻인데. 자칫하다간 이대로 사막에서 꼴까닥 하게 생겼어... 아, 내 말 듣고 있어요?"


"... 여우... 붉은 털을 가진 여우..."


"아까부터 웬 여우 타령이야? 이렇게 한가하게 누워 여우, 여우, 할 시간에 뭐라도 시도해 보라고요. 엔진 고칠 방법을 연구한다던가."


"여우 때문에... 온 건데..."


"뭐라구요?"


"여우 보러 온 거라고요. 확인하고 싶어서. 나... 붉은색 못 봐... 검은색으로 보여... 붉은색 계열 모두..."


그의 말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다.


시신경에 이상이 생긴 케이스라던가. 자기 얘기를 마치 남 얘기 하듯 덤덤하게 내뱉는 그였다. 별 일 아니란 듯이.


그 후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줄곧 지평선에 고정되어 있던 그의 손가락 또한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일어나 봐요, 리버! 이런 데서 잠들었다가 뭔 일 생기면 어쩌려 그래? 어머머! 저거 뭐야! 저기 여우잖아!"


손을 뻗어 그의 침낭을 마구 흔들었다. 침낭 속으로 웅크리고 들어간 그를 억지로 흔들어 깨웠다. 옅은 하품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다행이었다. 잠에서 금방 돌아온 그가 너무 반갑기까지 했다.


"리버는 보기랑은 다르네. 성격 참 태평스러워. 난 무서워서 잠도 안 오는데. 아, 왜 또 대답이 없어요? 그새 또 잠이라도 들었어? 이봐요! 나 궁금한 게 있다구요! 여우가 붉은색인지 어떻게 알아요? 붉은색 계통은 못 본다면서."


"... 보이겠죠... 달 뜨면..."


그의 팔이 툭, 내 이마를 향해 떨어졌고, '아얏!' 하는 비명이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왼쪽 팔목에 항상 팔찌를 감고 있던 그였다. 팔찌 끝에 매달린 금속 물건이 내 이마를 친 모양이었다.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금속.

자세히 보니 자물쇠였다. 비밀번호 다이얼이 4개 달려있는, 흔하디 흔한 자물쇠.


"이마에 혹 나겠네. 하필 자물쇠 모서리에 찍혀서."


"괜... 찮아요?"


"이 자물쇠 뭐예요? 뭐길래 소중하게 몸에 지니고 다녀요?"


"작년에... 건져 올린... 다이빙... 홍해에서..."


"오래된 물건인가? 아님 바닷속에 있어서 부식된 건가? 그리고 이 글자들 뭐야? 자물쇠 뒷면에 웬 글자가 다닥다닥 세겨져있네? 이거 어느 나라 글자예요? 알파벳도 아니고, 아라빅도 아니고, 한자도 아니고. 이 글자 이거, 뭐냐구."


"... 고대 문자... 베두인족들 교역했던... 유목민들..."


"뜻은 알아요?"


"나는... 지난다... 저주의 바다... 블루...홀..."


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작아졌다. 잠이 그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잠들지 마! 나 혼자 두고 잠들지 말라고!"


"... 잠들긴... 질문한 건데... 사랑... 당신한테... 블루홀, 왜 들어가려는지..."


"왜냐니? 기왕 다합까지 왔으니 한 번 들어가 보려는 거죠."


"... 잠들 수도 있는데... 말 안 해주면..."


"이, 이유 같은 게 어딨어. 거기 블루홀이 있으니까 들어가는 거죠."


"..."


잠깐의 침묵. 그리고 당황하는 나.


"알았어요, 리버! 잠들지 마요! 다 얘기할게요! 그냥, 그냥 다 잊어버리고 싶어 그랬어요."


"... 잊어... 무엇을?..."


"그냥 다. 전부 다. 내 인생 하나부터 열까지. 싹 다." 이번엔 나의 침묵 "아주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있으면 엄마 뱃속에 들어가 있는 거 같다는 생각 든다면서. 그러니까 그러고 나서 바깥으로 나오면, 다시 태어난 기분일 거 아냐."


"...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난 죽는다는 얘긴 안 했는데. 죽고 싶다는 게 아니라, 다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거라구요."


"... 잊어버리고 싶다면서... 인생 모든 걸... 내가 당신을 잊으면... 내가 아니라는 건데... 기억을 모두 잊는다는 거, 더는 내가 아니라는 건데..."


숨소리가 들려왔다. 규칙적으로 흩어지는 숨소리.

침낭 바깥으로 고개를 조금 빼고 봤더니,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잠든 그의 얼굴 위로 달빛이 떨어져 내리는 장면이 적나라했다.


"이봐요! 달 떴어요! 달 떴다구!"


세차게 흔드는데도, 깨지를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그랬다.


그를 흔들어 깨우다 보니, 내가 그 달빛에 더욱 가까이 가 있었다.


그의 뺨을 비추는 달빛에 내 입술이 가 닿을 지경까지.


난 그냥... 여우를 봤다는 얘기를 하려던 것뿐이었는데...


/ / /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지독하게 차가운 사막의 밤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보냈다는 것 말고는.


얼핏 여우가 보였던 것도 같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블루홀 } 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