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블루홀 } 5화

블루홀

by 슴샥

누가 그랬더라?


아무 일 아닌 거라 믿는다면, 정말로 아무 일 아닌 게 되는 거라고.


사십이 넘은 지금에야 그런 식으로 쿨하게 넘길 수 있겠지만, 이십 년 전에는 아니었다.


사막에서의 밤은 다음날을 미치도록 어색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리고 그도, 간밤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멀쩡해진 엔진을 두고 기적이란 얘길 떠들어댄 것이 고작이었지, 우리 둘 모두 말이 없었다. 사막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내내.


그 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리버와의 다이빙 레슨이 끝을 맞이하게 되었으니까.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나. 다합 전체가 다이빙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숙소는 물론이거니와 다이빙센터 또한 만원이었다.


그런데 그 점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솔직히 말해 레슨이고 뭐고, 불가능이었으니까.

사막에서의 일을, 그 밤을 떠올리자면...


백퍼센트다. 레슨이고 뭐고, 불가능이다. 이십 년 전의 나로서는.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다. 아예 다이빙을 안 나갈 수는 없으니, 다른 팀에 섞여 어영부영. 그러다 해가 저물면 뻘쭘하게 혼자 숙소로 터덜터덜.


다 괜찮았으나, 밤이 문제였다. 도무지 잠이라곤 잘 수가 없었으니까.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불면의 밤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낡아빠진 호텔방에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사막에서의 일을 되새김질하는 모습이라니! 그러다 침대 위로 달빛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심장이 멋대로 두근두근...


도대체 뭐였을까? 그 정의하기 힘든 감정은.


뭔가가 복받쳐올라 속이 울렁울렁, 엉망진창, 뒤죽박죽.


더 웃긴 건, '들키고 싶지 않다'라는 나의 강력한 의지였다.


그런 감정을 리버에게 들키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상태로 며칠이나 지났더라?


리버 없이 블루홀에 들어간 날인건 확실한데...


블루홀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다이버들. 그들을 보며 부지런히 팔을 움직여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늘 컨디션 괜찮네?' 하면서.


이상하리만큼 그날따라 스무스했다. 헤엄치는 동작도, 걸어가는 동작도, 하나하나 막힘이 없었달까.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리만큼 내 실력이 늘어있었다. 리버를 불러다 이것 좀 보라 자랑하고플 정도로.


이상하게도 허공이 무섭지가 않았다. 바닥 끝이 안 보이는 깊은 바다가, 정말이지 하나도 안 무서웠다. 이 실력이라면 앞으로는 홀로 블루홀에 입수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블루홀 이거, 별 것 아니네? 이대로 내려가면 바닥을 찍을 수도 있겠는걸? 바닥이 다 뭐람? 바닥 같은 거 가뿐히 뚫고 나가 지구 반대편에도 도달할 수 있겠어! 하면서.


그랬었다.


나는 겁을 잊었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 못 챌 정도로.


경련이 일어난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앞이 피잉 - 하염없이 돌기 시작하는데...


몸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온몸이 부르르? 아님 파르르? 하여간 떨리기도 몹시 떨렸다.


어쩌면 좋을까 대책이 서질 않았다. 이런 류의 돌발상황에 대처할만한 경험도 지식도 내겐 없었으니까.


어느샌가 머릿속엔 부정적인 단어들. 나의 죽음과 관련된 뉴스기사. 20대 한국여자. 이집트 다합 블루홀에서 다이빙 도중 경련으로 사망. 추모비. 장례식. 유족. 등등


머리 꼭대기 어딘가 아주 아득하게 수면이 보였던 것도 같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도달할 리 만무한 거리의.


그리고 그 장면. 지난번 보았던 그 장면이 또다시...


이대로 죽는 건가?


...


그때, 누군가 나를 잡아 끄는 느낌이 났다.


위로.


더 위로.


...


그였다.


익숙한 뒷모습.


리버...


/ / /


파라솔. 태양. 모래판. 그리고 사람들.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어설픈 영어. 그냥 영어단어들.


딱히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고, 사람들에게 대고 나 혼자 떠들어댔던 것 같다. 반쯤 정신 나간 상태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엎드려 헛구역질을 시작한 나를 내려다보며 술렁술렁.


세계 각국의 언어가 들려왔다. '저 동양인 여자, 블루홀에서 신기루를 봤다면서?' 하고 각자의 언어로 떠들어대는 것 같았다.


몸을 간신히 일으키긴 했으나, 참 흉했다.


내가 보기에도 내 몰골이 흉했다. 모래알에 토사물이 엉겨 붙어 엉망 그 자체.


그 꼴로 비틀비틀 걸어가다 리버와 마주쳤다. 어울리지 않게 날카로운 말투의.


"또 한 번 미친 여자라 불러봐! 네 머리통을 날려버릴 테니까!"


한국어로 해석하면 이 정도 되겠지?


사람들에게 리버가 욕을 하고 있었다.


그 미친 여자가 나임을 듣자마자 알아챌 정도로 티가 나게.


/ / /


사망 일보직전까지 갔던 내 몸은 원래 컨디션으로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늦은 밤이 되기까지 여전히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이...


잠을 자면 나아질까 싶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침대에 누운 상태로 내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아니지. 그것보다는 적나라했지.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외쳤으니까.


하지만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앞에서 말했거니와 어쩐지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린 후였으니까. 제대로 된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으니까. 사막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줄곧.


아무튼.


용기를 내보았다. 노크 소리에도 응답이 없는 그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등짝이 보였다. 캐리어에 짐을 구겨 넣기 바쁜.


"뭐해요? 이런 한밤중에?"


나의 말에 그가 돌아보았다.


준비해 간 말들이 참 많았었는데.


"낮에는 고마웠어요. 뭔 일 났을지도 몰라. 리버가 구해주러 오지 않았더라면."


겨우 그딴 말이나 내뱉는 게 고작이었다.


그 웃음...


여름을 닮은 그의 웃음...


그깟 웃음에 반해서...


전혀 몰랐다. 그의 목소리가 쌀쌀맞다는 것을.

나를 질책하는 것도 같았다. 내가 신기루에 관해 떠들고 다닌 일을 가지고선.


당황한 나머지 뭐라고 했더라?


믿지 못하겠다는 그의 표정 앞에서 나는 갑자기 말이 많아져버렸다. 게다가 심하게 횡설수설.


"나도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어, 그런 건. 물고기 떼 사이에서 아지랑이처럼 뭔가 피어나는데. 바닷속 같지가 않았어요. 내가 바닷속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고. 뭐예요? 내 말 하나도 안 믿는 얼굴인데? 그래요. 믿기 힘들겠죠.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은... 아, 왜 자꾸 그렇게 봐요?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나 진짜 봤다니까. 신기루 그거. 리버가 내 손 잡아주기 직전에. 딱 그때였어. 바로 앞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가는. 진짜예요, 리버. 내가 본거 그거, 신기루 맞다고."


"..."


"기억나. 아주 선명하게 기억난다고. 내가 봤던 표지판."


"표지판?"


"그래요. 표지판. 도로명 적힌 표지판. 세상 어디나 있는 그거."


리버의 얼굴에서 웃음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는 어째서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여겼던 걸까?


거기다 대고 나는 크게 외쳐댔다. 마치 내 결백을 증명하듯.


"이번이 두 번째야! 지난번 언제였지? 리버랑 쎄들 근처를 지나다가, 그때도 한 번 봤었거든! 오늘처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 그만하지."


"똑같은 장면 두 번째 보는 거라니까 그러네! 지난번보다 훨씬 선명했다고! 오늘 본 건!"


밤바람에 나무창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눈길이 갔다.


책상에 놓인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항공사 마크가 찍혀있는.


"뭐예요, 이거? 비행기 티켓이잖아?"


그의 이름이 찍힌 비행기 티켓.


그가 런던으로 떠나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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