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수꾼>(2010)을 보고 2016년에 쓴 글
비행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들 대부분이 말한다. ‘이 아이는 사실 나쁜 아이가 아니다.’라고. 반면 영화 <파수꾼>은 이렇게 말한다. ‘기태는 사실 외로운 아이다’라고.
기태(이제훈 분)는 흔히 말하는 불량 청소년의 표본이다. 주먹 하나로 학교를 평정한 소위 ‘싸움 짱’으로, 나약한 자신의 내면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강한 모습으로 무장한다.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기에 자신의 가족사를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면 괜스레 대화의 방향을 바꾸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친구들이 비웃는다고 생각해 예민하게 행동한다. 그렇게 기태는 폭력을 통해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려 한다.
기태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외로움을 감추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선과 관심을 갈망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면을 오로지 절친한 친구 동윤(서준영 분)에게만 드러낸다.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기태는 전적으로 친구들에게 의지한다. 애착이 강렬한 만큼, 그의 내면은 쉽게 부서질 듯 위태롭고 연약하다. 표현이 서툰 기태는 친구를 오해하고, 친구에게 오해 받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결국 그들과 멀어진다. 영화 <파수꾼>은 파국으로 치닫는 우정과 그 속에서 좌절하는 청춘의 행로를 추적한다.
‘파수꾼’의 의미는 ‘지키는 자’ 그리고 ‘진실을 추구하는 자’다. 윤성현 감독은 모 인터뷰에서 이 의미들을 반어적으로 쓰고 싶었다 밝힌 바 있다. <파수꾼>에서는 어느 누구도 진실을 알지도,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줬지만, 종국에는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 특히 기태의 경우는 더욱 지독하고 쓸쓸하다. 그러나 과연 이 모든 것이 기태의 개인적인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영화는 기태가 ‘사실은 착한 아이’임을 강조하기보다, ‘한없이 외로운 아이’임을 역설한다. 만일 이 아이를 바라보는 잣대가 선과 악의 문제에 국한된다면, 보통 생각해내기 가장 쉬운 대안은 이 아이가 보편적 기준에 부합할 수 있게끔 극복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될 테다. 그러나 때로 갈등이 공약 불가능한 채로 인정되어야 할 순간도 존재한다. 기태의 마음을 이리도 절절하게 표현한 이 영화가 도출해내고자 한 결론은 결코 어느 한 쪽으로 극복되는 하위 문화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도리어 그 속에서 극복되어야 할 것은 ‘차이’가 아니라 ‘상처’다. 이러한 점에서 이미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은 채 진정 기태의 아픔에 귀 기울인 <파수꾼>은 분명 의미 있는 영화다.
기태의 폭력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절대적 악인 혹은 가해자라고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떠나지 말 것을 눈물로 호소하는 소외된 청춘의 절규만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