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또 다른 엄마

by 고미젤리

이모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는 건 별로 없다.


작년 어느 날 낯선 번호가 떠 의아해하며 받아 보니 옥이 이모였다. 첫째였던 엄마 밑으로 여동생이 셋이었는데 옥이 이모는 엄마 바로 아래 둘째였다. 어릴 때는 꽤나 친하게 지냈던 거 같은데, 엄마와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지 서로 연락을 안 하는 것 같았다. 6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다른 이모들은 모두 왔지만 옥이 이모만은 볼 수 없었다.

옥이 이모는 내가 어릴 때 이혼했다. 어느 날 이모가 갑자기 밤에 찾아와 엄마 아빠와 울면서 얘기했던 날이 기억난다. 내 남동생과 동갑이었던 사촌 동생도 함께였는데,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평소의 장난기를 버리고 서늘하게 앉아 있던 모습이 낯설었다. 그렇게 까마득한 일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이모가 전화를 한 것이다.

우리는 옛 추억에 젖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엄마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지치지도 않는 이모의 입담이 재미있어 한참을 통화했고, 이후로도 이모와는 정기적으로 전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모가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으면 다소 두리뭉실 넘어가는 게 좀 의아했다. 들어봐야 좋을 일도 없었다고 했지만, 옥이 이모는 혼자 살며 별 다른 사교생활을 안 하고 있었고, 아들과도 연락이 끊겨 있었다.


어쨌든 이모와 정기적으로 안부를 주고받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나는 이모의 전화가 불편해졌다. 요즘은 카톡이나 문자로 연락하는 일이 많아 전화를 무음으로 해 놨는데, 내가 전화를 놓치면 이모는 심하게 불안해했다. 간혹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전화가 오면 나까지 불안해졌다. 나는 이모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중에 꼭 전화할 테니 좀 기다려 달라고 얘기했지만 소용없었다. 전화를 못 받으면 문자가 여러 개 쏟아졌다. ‘왜 전화를 안 받냐?’, ‘내 전화 피하는 건 아니지?’ 내가 이모의 전화를 피할 이유가 어디 있겠냐고 항변해 봐도 이모는 이해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언니에게 물어봤더니 언니는 이모의 전화를 안 받는다고 했다. 일 하느라 바쁜데 전화해서 너무 귀찮게 한다며 나 보고도 받아주지 말라고 했다. 나도 그래볼까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막상 전화가 오면 그래도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받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모가 많이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놀러 오라는 말은 이 핑계 저 핑계로 피했지만 적어도 오는 전화는 성실히 받아 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주, ‘이제는 전화를 정말 피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지금 당신을 엄마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엄마의 마음으로 나를 생각한다고 따뜻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며칠 전 친구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부모님의 건강과 돌봄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내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든데 부모 봉양에 시댁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는 낀 세대라며 신세 한탄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때 주말마다 언니들과 돌아가며 간병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간병인이 계셨지만 그분들도 일주일에 한 번은 쉬셔야 했고, 명절 때는 이틀을 쉬는 분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병원 간이침대에서 밤을 지새야 했다. 엄마는 참 까다로워서 이런저런 요구가 많았고, 인내심이 다한 나는 엄마와 많이 투닥거렸다. 그래도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겪고 나니 엄마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는 덜게 되었다. 엄청난 효녀는 아니었더라도 그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자조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모가 나에게 딸 역할을 말한 것이다. 나는 그것이 딸이 책임져야 할 돌봄의 부담으로 느껴졌다. 자신의 전화를 받아주고, 생활 속 궁금한 점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며, 외롭게 혼자 아프지 않도록 들여다봐 달라는 부탁이 간단한 것일까? 미안하지만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이모의 전화는 대부분 외롭고 슬픈 캔디 같은 이야기였고, 그렇다고 굳세고 명랑하게 상황을 대처하고 있지도 않았다. 사람들과 왕래가 별로 없다 보니 최근 기술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전화로 설명해 줄 수도 없었다. 게다가 두 시간이나 걸리는 이모집에 가끔 들르라니, 상상만으로도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이 글을 이모가 발견하면 많이 섭섭해 할 것같다. 하지만 이모도 엄마라고 강력 주장하던 날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것을 이모가 알아줬으면 싶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20년도 더 지났다. 그만큼의 세월을 다시 채워 이모가 우리 엄마 같이 느껴질 것 같지 않다. 매정한 이야기지만 나에게 이모는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라 엄마가 아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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