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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Jun 17. 2021

날 웃음짓게 하는 80년대생 언니의 마루

마루라 말하고 거실이라 읽는다

21년 6월 16일 수요일

도로가 녹든, 내가 녹든 뭐하나 녹아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뜨거운 날씨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그녀가 나에게 경우 없는 행동과 함께 선 넘는 말을 마구 휘둘렀다. 그걸 참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욕을 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대치의 모지고 험한 말로 되돌려주었다. 조곤조곤한 어조를 유지하며 중간중간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못한 채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멘탈을 부셔버렸다.


 꿈이었다. 나는 꿈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현실과 다를 바가 없이 너무 실감 나서 꿈인 줄 몰랐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연신 비비며 잠에서 빠져나왔다. 비록 꿈이었지만 감정 소모와 더불어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을 해서 그런지 피로감이 가득했다.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이 무거웠다. 그리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속 시원하고 개운한 일은 아니다. 늘 끄트머리에 불편한 마음이 따라다닌다.





 꿈이었지만 아침부터 불편한 마음이 자리 잡았다. 괜스레 일어나기 싫어서 SNS를 훑어보며 밍기적거렸다. 오늘 한국의 하늘은 미모가 열 일 중인지 너도나도 푸른 하늘을 자랑했다. 마치 한국에서 있는 것 같았다. 무심코 툭툭 넘기던 중 J 언니의 한강 사진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나는 웃어버렸다.


 마루 소파에 앉아서 멍하게 보게 되는 날씨, 매일 한강이 이런 날씨였으면 좋겠다.


 내 머릿속에 마루는 삼시세끼에서 차승원이 가볍게 요리를 하곤 했던, 문 앞에 길게 놓인 나무 평상 같은 것이다. 실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외에만 존재하고 주택에만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마루의 정의이다.

언니는 항상 거실을 마루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아파트에 마루가 어디 있냐는 나의 물음에 언니는 80년 대생들은 마루라고 말한다고 했다. 80년대생 언니의 마루는 90년대생인 나에겐 거실이다. (사실 태어난 시기보단 각자의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지만..!)


 지난번에도 마루라는 표현으로 우리는 한바탕 웃었고 언니를 옛날 사람이라고 놀렸던 것이 떠올랐다. 오늘도 그 마루로 인해 나는 웃었다. 아침부터 무거운 마음으로 우중충할 뻔했던 나의 일과가 언니의 마루로 인해 환해졌다. 별 거 아닌 일에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집 마루는 어제 청소를 하지 않은 나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루이의 털과 각종 먼지들은 잔뜩 모여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뒤엉켜 온 마루를 돌아다녔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마루를 깨끗하게 청소했고 언니의 마루를 생각하며 한번 더 미소를 싱긋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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