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이상 살아온
서울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도시 탈출"
포부는 거창했지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앞두고
내 선택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보를 검색하거나
지역에 내려가 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나의 결정은 대책이 없었다.
출퇴근할 때
회사에서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눈치를 보면서)
귀농귀촌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는데...
"000 키워서 100억 부자 된 사나이"
"귀농귀촌인 10억 지원"
내가 처한 상황은
그들과 다르기에
가십거리인 기사들이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현장엔 답이 있겠지?"
직접 보고, 듣고, 느껴보기 위해
그 해 여름휴가의 행선지를
푸르른 농촌으로 정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거나
귀농귀촌협회에서 진행하는
캠프 일정을 참고하여
휴가 일정을 계획했다.
그렇게 홍성과 단양을 다녀왔다.
두 지역에서 진행한
캠프의 성격과 내용은 달랐지만,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도시 탈출'이란 포부가
다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헐렁하면서도 빡빡했던
1년을 보내고 난 퇴사를 준비했다.
어느 지역으로 내려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
집은? 교통편은? 부모님 설득은?
정해진 것은 없었다.
다만, 서울을 떠나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반드시
있을 것이란 자신감은 두둑했다.
퇴사 후 2주간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왔다.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취업사이트에서 지역을 선택할 때
무조건 서울 외 지역으로 필터링을 했다.
각 군청 사이트에도 들어가 보고
워크넷에도 들어가 보고
확실히 일자리는 적었지만,
괜찮은 곳도 몇몇 있었다.
공장, 사무보조 등
월급도 나쁘지 않았지만,
지역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마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우선 지역에 상관없이 마을과 관련된
관련된 직장, 직무 채용공고가 있으면,
지원자격에 상관없이 서류를 접수했다.
한 번은 경험 삼아
A지역 마을만들기센터
부센터장 자리에 지원했는데,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 뒤 들뜬 마음으로
면접장에 방문했는데...
면접을 통해 파악한 바로는
'하도 젊은 친구가 지원했길래
궁금해서 만나보고 싶었다'는
느낌이었다.
바로 탈락을 예감했지만,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심사위원들은
'해당 포지션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곳에
추천해주겠다고' 위로를 해줬다.
(실제로 일주일 뒤 연락이 왔지만,
나는 이미 일자리를 구한 뒤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개뿔 가진 것도 없으면서
대책 없이 퇴사하고
귀촌을 준비했던 나의 모습이
막막하게 느껴지지만,
그때 막무가내적인
결정과 용기가 있었기에
지금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