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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an 16. 2021

[3일] 편견 없이 그림책 읽기

처음으로 산 그림책 <곰씨의 의자>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책은 초등학교 시절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과학만화 전집이다. 내용은 깊고 방대했다. 그림책이라 푹 빠져서 보았다. 생물책을 보며 각종 식충식물들에 빠졌고 지구과학에서는 우주비행선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지구 너머의 세계에 관심이 생겼다. 오빠와 동생을 거치며 자기가 관심 있는 부분을 마구 오리다 보니 책이 너덜너덜해졌는데, 이후 두 아이를 둔 친척분이 이 책을 몽땅 가져가셨을 정도로 인기였다.


머리가 크고 몸이 자라니 더 이상 그림책을 보지 않게 됐다. 텍스트에 간간히 그림이 섞여 있을 정도였다. 그림은 어느새 아이들을 위한 것, 읽는 책이 아니라 아이에게 읽어주는 책으로 생각됐다. 나는 더 이상 그림책을 보지 않는 어른이 됐다. 하지만 가장 힘들 때 종종 위로가 돼 준 것은 장문의 글이 아니라 그림이었다. 수많은 텍스트보다 그림 한 장 한 장이 위로가 되는 날이 있다.  그림과 몇 단어만으로 큰 울림과 공감을 준다. 인스타그램에서 즐겨보는 몇몇의 그림들, 그림이야기들은 마음을 오래 머물게 했다.


처음으로 그림책을 샀다.

엄마가 사 준 그림책 이후로 처음이다. 고른 책은 <곰씨의 의자>이다. 곰씨가 책을 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표지에 나온 곰씨의 얼굴부터가 ‘나는 착한 곰’이라고 쓰여 있었다. 햇살이 눈부신 날 한가로이 의자에 앉아 시집을 읽고,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곰의 표정이 평화로워 보인다. 주말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가로이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 곰씨를 보며 주말이면 책을 챙겨 카페에서 책을 보던 여유로운 시간이 떠오른다.


어느 날 지쳐 보이는 토끼가 지나간다. 곰은 지쳐 보이는 토끼와 슬퍼 보이는 토끼에게 의자를 내주며 위로를 건넨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둘의 아이가 태어나자 매번 의자를 내주고 점차 사생활이 없어진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하지만 용기가 없다. 의자에 일부러 페인트 칠을 하거나 누구도 앉지 못하게 누워있지만 충분치 않고 결국 쓰러진다. 여기서 ‘관계’의 문제가 드러난다. 해결은 결국 곰씨가 용기를 내어 속 마음을 터놓을 때부터 시작된다. 토끼는 곰씨에게 공간을 배려해 주고 의자 대신 넓은 숲을 누빈다.

곰씨를 보며 곰곰이 생각해본다. 좋은 관계 유지 때문에 참고 희생하는 게 답이라고만 생각했던 적도 있다. 속 마음을 터놓아서 불씨를 키우는 것보다 관계의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 건 해답이 될 수 없었다. 친밀감을 무기로, 때론 ‘너는 착하니까’라는 이유로 선을 넘는 일이 잦아질 뿐이었다.


관계의 적당한 거리는 가까울수록 더 중요하다. 적당한 거리를 못 찾고 힘들어하고 있을 나와 같은 수많은 곰씨들, 친함 또는 가까움을 무기로 선을 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토끼들에게 권하고 싶다. 용기를 내서 말을 하고, 서로에게 대화를 해서 거리를 유지하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만화를 푹 빠져보았던 마음으로 그림책에 정신을 쏟았다. 생각해보면 그림책은 주로 아이들이 읽지만,  그 시절을 지나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을 응축하고 녹여낸 작가는 결국 어른이다. 그래서 그림책 속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보면서 함께 공감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찾아보니 이미 어른을 위한 그림책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잘 몰랐던 그림책의 세계를 알아가면서, 하나하나 찾아가며 아껴보고 싶다. 다음 책은 뭘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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