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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an 26. 2021

[13일] 다른 나라 창밖 구경

전 세계 창문 뷰를 엿보다

‘하와이에 가기 위해 수영복을 살 때부터 여행은 시작된다’고 한다. 여행 준비의 설렘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다. 결혼 후 첫 해외여행지로 꼽아둔 곳은 스페인이었다. 남편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나는 세비야를 가보고 싶었다. 바르셀로나 스타디움에서 축구를 보고 세비야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마시자고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껏 부푼 꿈은 오래지 않아 깨졌다. 금방 잠잠해질 줄 알았던 코로나는 나날이 더 심각해졌다. 보통의 일상마저 삼켰다.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카페에서 커피조차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자연스레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햇볕이 잘 드는 널찍한 베란다를 그냥 두기 아까워 작고 기다란 바 테이블을 놓아두었다. 내 임시 카페다. 이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고,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고 흐르는 구름을 보면서, 창밖 풍경을 보는 걸로 작은 위안을 삼고 있다.      


당신의 창 밖 풍경은 어떤가요     


창문 밖 풍경을 보는 것도 이 집에서 사계절을 겪고 나니 일상처럼 느껴지던 차에, 오늘 전 세계 곳곳의 집안에서 보는 창 밖 풍경을 영상으로 공유하는 플랫폼을 알게 됐다. 집 안에서 창밖을 보며 여행을 꿈꾸는 이들은 서로의 창문 밖 풍경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사이트 이름은 ‘Window Swap', 일명 '창문 바꿔보기'이다. 사이트에 들어가니 가운데 한 가지 문구가 뜬다. '열려라 참깨‘처럼, 마치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어떤 주문처럼 보인다.     


  Open a window somewhere in the world.
세계 어딘가의 창문을 열어보세요.
미국, 마이애미 | 캐나다, 체스터

다른 나라의 집 밖 풍경이 뜬다. 화면 상단에 조그마한 글씨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인지만 간단하게 적혀 있다. 그들이 사는 창밖을 보는 건 낯설고 흥미로웠다. 처음 만나는 집은 캐나다 어느 가정집의 뒷마당처럼 보인다. 파랗게 개인 높은 하늘에 맞은편 붉은 집이 보이고, 가을 낙엽이 빛을 받아 반사된다. 빨래 자락은 바람에 몸을 맡기며 살랑인다. 두 눈이 평화로워지는 풍경에 잠시 머물렀다. 이미 가본 도시의 창문을 만나는 일은 더 반갑게 느껴진다.    


여러 나라를 스쳐 지나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집안으로 들어가 본다. 집에는 초록빛을 뿜어내는 식물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창문 너머엔 고층빌딩이 보인다. 푸른 하늘엔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멀리 바닷가가 보인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들으며  집에 눌러앉았다.


큰 모니터에서 창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 집에 잠시 내가 살고 있는 기분에 젖어든다. 여행지에서는 주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거나 밖을 구경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안에서 밖을 본다는 건,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시선과 닮아있다. 1인칭여행자시점으로 집에 머물면서 음악을 듣고, 고양이를 구경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눈 내리는 풍경을 바꿔보면서 창문 밖 풍경을 탐미했다.

독일   |  네덜란드

멋들어진 풍경만 공유되는 건 아니다. 맞은편 집이 보이는 창문 뷰도 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쓸쓸한 동네의 모습도 보인다. 어떤 날씨, 어떤 풍경이던지 간에 혼자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공간에서 누군가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곳,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힐링의 장소나 관광명소와 같은 특별한 공간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오늘의 공간이기에 더욱 그렇다.   


윈도 스와프는 플랫폼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해봅시다. 우리는 모두 실내에 갇혀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Window-Swap은 잠시나마 다른 사람의 창문을 통해 세계 어딘가를 바라볼 수 있게 함으로써, 방황하는 마음의 깊은 공백을 메울 것입니다."      


창문만으로도 보통의 존재들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당신의 창밖 풍경은 다른 이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 다른 나라를 여기저기 느긋하게 돌고 온 것 같은 날이었다.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당신의 창 밖 풍경이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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