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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an 27. 2021

[14일] 클래식에 한 걸음

클래식과 친해지기


클래식을 사람으로 따지자면 왠지 친해지기 어려운 친구 같다. 겉모습이 도도하고 예민하면서도 자기만의 세계가 분명해서, 수줍음 많고 소심한 친구들에게는 먼저 다가서기 어렵게 만드는 느낌이다. 설령 그 주변에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찐친’ 들만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이는 거다. 쉽게 인사를 하거나 손 내밀기 어려운 친구. 적어도 내게 클래식은 그랬다.      


클래식하면 ‘듣기’의 영역보다는 ‘공부’의 영역이랄까. 아무 음악이나 귀로 듣다 보면 몸과 마음이 먼저 동하는 음악을 만나게 되고, 그 음악과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고, 가수를 알아가게 된다. 그런 식으로 나는 자연스레 음악과 친해지곤 했는데, 클래식만큼은 마음의 벽이 높았다. 먼저 듣기 전에 다양한 전문용어와 마주쳤기 때문에, 더 어렵게 다가왔다.


음악 수업 시간에 시험문제로 등장했던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 칸타타 등의 용어를 시작으로, '베토벤 Symphony No.5, C minor, Op.67'와 같은 클래식 곡의 제목에서는 클래식의 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높은 벽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자만이 저 난해한 암호를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클래식 용어들 앞에서 살짝 무기력해지곤 했다.     


그러다 며칠 전 책 한 권을 건네받았다.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가 쓴 <1일 1페이지 클래식 365>이다. 보통 클래식을 장르별로, 시대별로 또는 작곡가별로 소개하는 건 흔한 일인데, 그렇게 소개된 책일수록 공부하는 느낌이 진하다. 오히려 매일 한 곡씩 선곡해주는 건 클래식 초보자에게는 좋은 접근법인 것 같다. 삼시 세끼 밥을 먹다가 한 끼 다른 음식을 먹는 것처럼, 날짜에 맞게 그날그날 한 곡씩만 들어보자 싶었다. 듣다가 안 맞으면 내일 또 새로운 곡을 들어보면 되는 거니까.      


 매일 한 곡씩 1년 치의 클래식이 소개돼 있다. 한 곡은 딱 한 페이지를 넘지 않게 설명해 놓았다. 클래식 한 곡에 많지도, 적지도 않게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설명이 있어 부담이 덜하다. 하나의 곡에 담긴 작곡가의 일화와 시대 배경이 한 페이지에 녹아있고, 각 페이지마다 바로 음악을 이어 들을 수 있도록 QR 코드를 심어 놓았다.


오늘은 1월 27일. 어떤 곡이 소개됐을지 궁금해서 이 페이지부터 펼쳐본다. 오늘은 다름 아닌 모차르트 생일이다. 모차르트 생일에 그와 관련된 곡을 선곡받으니 의미가 더 깊게 느껴진다. 선곡해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다. 음악 수업 시간 때 익히 들었던 유명한 그의 곡과는 달리 처음 들어보는 모차르트의 음악이다. 연주회 영상을 천천히 보면서 따라 간다. 집중하려 할수록 집중에서 멀어질 것 같아, 느껴지는 대로 듣는다. 관현악기와 소프라노의 음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찾아보면 일상에도 클래식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지하철 환승역에 나오는 음악은 비발디의 ‘사계’라고 하고, 빨래가 끝나면 매번 세탁기를 통해 듣는 음악은 슈베르트의 ‘송어’다. 클래식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마음이 멀었을 뿐이지. 마음에 드는 곡이라 해도 그 곡이 단지 클래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시 멀어지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이다.


더 찾아보지 않고, 더 들어보려 하지 않아서 내가 아는 부분들은 곡 전체의 몇 마디에 그치는 적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굳이 닫아 놓을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한 가수의 음악 중에서도 좋아하는 곡이 있고, 마음에 안 와 닿는 곡이 있듯이, 어떤 클래식이 좋으면 계속 일단 들으면 되고, 지루하면 다른 곡을 들어보면 될 일이었다.       


모차르트 생일을 기념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오늘 새벽 두 시에 모차르트의 미발표곡을 연주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두 시까지 잠을 쫓아내고, 마음을 열고 들어 보기로 한다. 내 몸에 맞게 이해하면 되니까. 그래서 올해 마지막 12월 31일에 마지막 페이지의 곡을 들으며, 난해하기만 했던 클래식의 숲을 조금은 걷다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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