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의 기록을 마치며
'우리의 삶이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과정'
- 신영복 <처음처럼>
사무실 내 자리 뒤편에는 신영복 선생님이 직접 쓰신 ‘처음처럼’ 액자가 걸려있다. 늘 처음처럼 이라는 단어와 함께하면서도 나는 ‘처음’을 자주 잊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 제안과 시도들에도 자주 멈칫했다. 신중 해졌다기보다는 무뎌지고 있다고 느꼈다. 과거의 좁은 경험의 폭이 자칫 어떤 도전들 앞에서 내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뎌지는 삶, 반쯤 잠든 채로 살아가는 삶에서 깨어있고 싶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처방전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 나가야만 할 것이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몸과 마음을 벗어나기 위해선 머무는 삶이 아니라 감각을 깨우는 삶이 필요하다.
나목이 잎사귀를 떨구고 겨울 동안 자신을 냉정하게 직시하듯 나에게도 처음의 시간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한 계절을 보내고 나면 물기를 머금은 나무는 다시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우듯 무언갈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0일 매일 하나씩 새로운 일하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30일 동안 작고 소소하지만 새로운 일들로 하루의 빈틈을 채워 보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했던 일들이다.
1일. 모르는 길을 달려보았다
2일. 붓글씨를 써보았다
3일. 그림책을 읽어보았다
4일. 레몬 씨앗을 심었다.
5일.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올랐다.
6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했다.
7일.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8일. 요가를 했다.
9일. 커피 대신 인삼 대추 생강차를 마셨다.
10일. 플로깅을 했다. 달리면서 쓰레기 줍기.
11일. 통밀빵을 구웠다
12일. Asmr을 들었다.
13일. 윈도 스와프를 구경했다.
14일. 클래식을 들었다.
15일. 수어를 배웠다.
16일. 필사를 했다.
17일. 아무것도 안하기을 ‘했다’
18일. 통밀 스콘을 만들다
19일. 출퇴근길 책 한 권 완독
20일. 온라인 미술 전시회 감상
21일. 버스 타고 종점 가기
22일. 책 쓰기 강연을 듣다
23일. 하루 물 2리터 도전
24일. 클럽하우스를 해보다
25일. 에세이 사연 응모
26일. 낭독 독서모임을 시작하다
27일. 출판사에 저작권 사용 문의를 해보다
28일. 영어 원서를 읽기 시작하다
29일. 나에게 질문을 던지다
30일. 29일간 새롭게 한 일들을 정리하다
처음만 29번째인 날들을 보냈다. 처음 시작할 때 ‘새로운 일’을 정의 내려 보았다. 새로운 일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새로운 걸 처음 해보는 것, 못했던 것을 하는 것, 안하건 것을 하는 것, 했던 걸 안 하는 것’
매일 새로운 걸 하나씩 해보며 깨달은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전날 밤에 잠들기 전부터 ‘다음 날 새로 뭘 해볼까?’ 를 생각하며 잠들게 됐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조금은 다른 마음을 갖게 했다. 그럴 때면 마음들에도 새싹이 돋았다. 하루키의 말처럼 어떤 광경을 놓치지 않도록, 기척을 놓치지 않도록 조금 더 세심하게, 주의 깊게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99프로의 일상에 1프로의 해프닝만 있어도 하루는 달라질 수 있다. 늘 찾아 헤매던 통밀 식빵 대신 집에서 빵을 만들어 먹게 되었고, 해외여행을 못 가는 답답함은 다른 나라 창문을 엿보며 해소했다. 냉장고에서 죽어가던 레몬은 새싹으로 화분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조금 더 선명하게 하루의 나날들을 보내는 데 집중하게 됐다.
또 하나. 그동안 내가 뭘 안 해봤고 또 어떤 편견을 가졌었는지 돌이켜보게 됐다. 이슬아 작가의 말처럼, 마음이 게으르면 무언가를 대충 보고 누군가에 대해 빠르게 판단하고, 혹은 무언가에 대해 함부로 단정 짓는 경향이 생겨날 수 있다. 내가 그랬다. 수어를 배우면서 하나의 언어로 수어를 이해하게 됐다. 아무것도 안 해보기를 ‘해보면서’ 바삐 사는 것만이 정답이라 생각했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됐다. 요가를 하면서 요가가 운동이 안된다 생각했던 시간 또한 돌이켜보게 됐다. 용기 내 인사를 해보며 인사를 기쁘게 나눠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삼십일 간 매일 조금씩 새로운 걸 하면서 딱 한 가지 꾸준히 한 게 글쓰기였다. 이건 또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시간이 없어서 라는 것도 핑계였다.
새로운 것 해보기가 유연성이라면 꾸준한 글쓰기는 잔근육이었다. 유연해지면서도 단단해지기를 몸으로, 마음으로 연습해 본 시간이었다. 새로운 일들을 몸으로 경험해보고, 밤에는 글로 하루를 쓰면서 오늘을 두 번 재생시켜 볼 수 있었다. 그럼 하루를 두 배로 풍부하게 보낸 셈이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의 변화다. 비록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일들이었다 할지라도 무언가를 ‘해봤다’는 사실만큼은 남는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일들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한다. 나는 바삐 흘러가는 하루의 틈을 내어 새로운 숨구멍들을 찾았고, 글을 써보면서 새롭게 메워나갔다. 작지만 새로운 일들을 통해 행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고 느끼는 연습을 계속하며, 꾸준한 처음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