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던지는 질문들
인터뷰는 타인을 알아가는 최고의 도구다.
수많은 질문들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비로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내가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인터뷰들을 당할 일이 없을 수 있다. 오늘 <1cm 다이빙> 이란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질문을 던져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작가는 여러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한다. 이 과정에서 불행했던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현재의 자신을 보듬어가며 자신만의 ‘행복’의 모양을 조각해 나간다. 작가의 유머러스한 말재간과 에피소드 외에 인상 깊게 남았던 것들이 바로 이것이었다. 질문하기.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새로움’인지 모르겠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가 있나요. 어디든 좋으니 소개해보세요.
제주도를 찾았다. 한겨울이었지만, 제주의 겨울은 낭만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함덕 해수욕장을 걷다가 바다가 잘 보이는 위치에서 원터치 텐트를 폈다. 번거로움 없이 금세 누울 자리가 만들어졌다. 텐트도 쳤는데 먹부림이 빠질 수 없다.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서 맥주와 과자를 사 왔다. 낮술을 마셨다. 그리고 바람을 피해 텐트 안에 잠시 누웠다.
텐트 안에서 보이는 바다는 밖에서 보는 바다와는 또 달랐다. 텐트 문이 만들어 놓은 아치형의 바다 풍광을 보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하늘과 바다와 백사장이 어우러져 아치형의 문 앞에서 넘실거렸다. 잔잔한 물에서 서핑을 하는 이들을 하염없이 보았다. 이내 우리가 자리 잡은 곳 주변으로 으리으리한 텐트가 자리했지만, 다음에 다시 원터치 텐트를 들고 함덕을 찾아야겠다 생각했다.
작은 공간이 만들어주는 아늑함과 너른 하늘과 바다가 주는 풍경의 묘한 하모니를 여전히 기억한다. 그 때문인지 그날 낮부터 마시기 시작한 맥주는 하늘에 노을이 붉게 물들다 이내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작지만 내 마음대로 살아본 순간이 있나요. 당신은 어떤 주인공이었나요
대답을 구하기 어려웠다. 동생에게 약간의 동경을 가졌다. 쌍둥이이지만 동생은 하고 싶은 걸 나보다 조금 더 마음대로 하곤 했다. 고3 때 점수 1점이라도 올리려고 아등바등할 때, 동생은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백두산을 다녀왔고, 대학 시절엔 편입을 준비한다며 부모님 몰래 서울로 올라왔으며, 회사 역시 몰래 때려치우고 지금은 본인의 업을 잘 꾸려가고 있다. 부모님의 기대와 바람이 어느새 내 목표와 계획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좌충우돌하는 동생의 삶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제 길을 만들어 가는 모습들에 언젠가부터 조금씩 동경의 마음이 들어섰다.
내 마음대로 살아본 순간은 그래서 어려웠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에 이끌려 왔던 시간이 길었다. 하고 싶은 걸, 새로운 일들을 조금씩 해보자고 생각한 올해의 다짐은 그래서 소중했다. 올해 ‘하루에 한 가지 새로운 일하기’ 30일 프로젝트를 혼자 실행하면서, 작은 변화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다. 해보고 싶은 것들이지만 미뤄왔던 일들이거나, 귀찮아서 안 해봤던 것들을 해보는 중이다. 그림을 그려보고, 아무 길이나 뛰어다녀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가서 인사도 해보는 일들이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잘 안된다면 작은 일들부터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둘씩 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내 마음을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해 브런치에 글로 기록하게 된 것도 어떤 목적보다도 마음이 시키는 일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런 시작을 하지 않았으면, 작지만 내 마음대로 살아본 순간을 떠올려보는 이런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일상은 종종 타인과 얽히고설켜 내 뜻대로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작지만 새로운 일들, 내가 해보고 싶은 걸 시도해보는 것 만으로 내 의지로 보낸 하루가 만들어지고, 내일의 힘이 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고 있는 중이다.
꿈이 꼭 있어야 할까요? 꿈에 대한 나의 생각 적어보기
“형은 꿈이 뭐예요?!”
한 프로그램에서 어떤 이가 유재석에게 묻는다.
“난 그런 거 없어.”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수십 년간 큰 업 앤 다운 없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 MC 유재석이 꿈이 없다는 사실. 꿈과 목표를 분명하게 세워두고 자기 관리를 하며 쉬지 않고 달려왔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실패가 두려웠고 실망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무언가 일이 하나 맡겨지면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이었다. 전날 놀러 간다거나 하지 않고 방송에 맞춰 컨디션을 조절하고, 방송에서 최대한 모습을 보여주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그는 “목표만 세워두면 정작 열심히는 안 하는데 고민만 늘어난다. 그러다 불안감만 생긴다”며 그래서 "무언가를 하는 데 있어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걸 싫어한다"라고 했다.
그와는 다르게 나는 늘 목표 추종자라서 목표와 계획을 세워두면서 살아왔다. 목표대로 되는 날엔 내가 스스로 세운 계획을 칭찬했다. 문제는 목표대로 되지 않았을 때다. 수없이 해봐도 이룰 수 없었을 때, 그때 나는 쉬이 무너지곤 했다. 그리고 다음에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오랜 방황을 해야 했다. 목표를 향해 달리다 목표가 없어지고 나니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최선을 다하다 보면 원하는 게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런 가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영화 <소울>을 보았다. 무언가가 ‘되면’ 꿈이 완성된다고 믿는 한 사람에게, 그 꿈이 이뤄지더라도 인생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깨우쳐 준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불꽃같은 순간들은 한 번에 화르르 생겨서 소진되는 게 아니라, 인생의 작고 반짝이는 조각들을 발견하면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었다. 실패나 좌절이 꿈과 목적을 모두 소진하는 것이 아님을, 순간들의 소중함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은 하고 싶은 걸 한다. 내 맘대로. 이제야 목표 말고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즐겨보려 하고 있다. 목표 계획 성취가 주는 이점도 분명히 많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자각해야 한다. 목표가 나를 잡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