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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Feb 08. 2021

[26일] 낭독의 재발견

낭독 독서 모임을 시작하다


몇 해 전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낭독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복지관에 나와 책을 녹음하고 집에 돌아가곤 했었다.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홀로 한두 시간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모습은 얼핏 외롭고 쓸쓸한 독서 시간으로 보일 수 있겠다 싶다. 그렇지만 누군가 내 목소리가 담긴 책을 들으며 눈 대신 마음으로 세상을 느낀다고 생각하니, 녹음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엔 마음이 한 결 따뜻했다. 누군가를 위한 책 읽기가 잠시나마 내게 준 위로였다.      


낭독은 나를 위한 책 읽기에도 유효했다. 책을 읽다 보면 계속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들을 만났다. 그럴 때면 필사를 한다.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치고, 그 밑에 내 생각을 적어 넣다 보면 문장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몇 번이나 문장을 머릿속으로 되뇌다가 간혹 책을 들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그래서 결국엔 내 목소리를 녹음해보게 되는 것이다. 혼자 녹음한 문장들을 때로 꺼내 들으면서, 비로소 문장들은 곁에 오래오래 남는 듯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낭독 독서 모임을 신청했다. 단지 독서모임이 아니라 낭독 모임이라는 데 마음이 갔다. 모임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한 달 동안 독서습관을 만들기 위한 매일 30분 책 읽기와 더불어 녹음한 콘텐츠를 같이 단톡 방에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서로 모르는 이들과 단톡 방에서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30분 동안 읽은 사진을 인증하고, 이어 각자의 목소리를 올렸다. 일면식은 없으나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 분은 이런 사람이겠구나 하는 상상도 해본다.      


낭독은 단순한 독서법의 한 종류에 그치지 않는다.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내 목소리를 온전히 인식하는 것이다. 타인과 대화하는 동안에는 내 목소리가 어떤 결을 가졌는지 쉽게 알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이 녹음한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은 무척 어색하다. 내 목소리를 이어폰에서 들으면 마치 나와 대화하는 기분도 든다.


사회생활을 해 나갈수록 자연스럽게 내 목소리를 내는 순간을 점점 더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침묵이 미덕인 사회에서 너무 자주 내 분수를 인식하느라 말이 줄고,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낭독을 하는 순간만큼은 단순한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넘어 내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줌(Zoom)으로 소통을 하면서 더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다. 성형문의도 늘었다고 한다. 거울을 자주 보지 않는 한 자신이 비치는 모습을 화면에서 마주할 일은 드물다. 그러다 화상회의를 통해 자신의 얼굴이 공공연하게 비치면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가입한 클럽하우스에서, 오늘 처음으로 모더레이터를 맡아 여러 사람 앞에서 목소리를 냈다. 막상 말을 하려니 입이 얼고, 보이지 않는 청중들 앞에 있는데 땀도 조금 나는 것 같았다. 내 목소리를 내는 게 이리 편하지 않을 줄이야. 어렸을 때부터 배운 말하기, 듣기는 어른이 된 지금에서도 여전한 숙제임을 실감했다.


내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를 섬세하게 들어볼 일이다. 하루 종일 소음에 지친 귀를 나 스스로 달래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으로 낭독을 한 목소리를 몇몇 사람과 톡방에 공유하며, 조금씩 목소리의 면적을 넓혀 나가보고자 한다. 내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듣는 나를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를 위한 책 읽기에서, 앞으로 한 달은 나를 위한 책 읽기에 신경을 쏟아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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