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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SNS에서 사연 모집글을 보았다. 내용은 이렇다.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당신은 반가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잔잔하게 흐르던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반가움은 기쁨과 설렘이라는 큰 파도를 일으켜요. 그리워하던 이와의 만남부터 깜깜 무소식이었던 텃밭의 작은 새싹까지, 반가움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컨셉진에게 들려주세요. 소소한 우리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 유명인의 멋진 삶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니까요."
- 컨셉진 (conceptzine 인스타그램)
최근 한 달 가까이 작고도 소소하지만 매일 새로운 일들을 경험해나가고 있다. 은근히 쉬워 보이지만 매일 반복되는 루틴한 개인의 삶과 바쁜 회사생활에서 1 퍼센트라도 작은 변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음을 온몸으로 체감 중이다. 게다가 매일 새로운 일들을 기록으로 꾸준히 남기는 일은,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함과 새로움을 하루에 모두 가져가는 일이어서 부지런한 마음과 반짝이는 마음을 하루에 채워나가는 게 자동으로 되는 일은 아니란 걸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그 덕에 새로운 경험들을 해보면서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 반가운 순간들을 마주하는 기쁨을 하루에 한 번씩 누리고 있다.
‘나의 작심하루 실험실’의 레몬 씨앗 발화 프로젝트 역시 반가움의 순간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3주 정도 전에 냉장고에서 꺼낸 레몬은 씨앗 발아에 성공했고, 이젠 손가락 길이보다 훌쩍 자라 건강하게 커 나가는 중이다. 열흘 가까이 소식이 없던 씨앗이 열흘이 지나자 하루가 다르게 커갈 때 매일 달라지는 그 순간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로 소복이 쌓인 눈은 작년 초에 한라산에서 본 게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몇 시간 만에 내린 폭설은 하얀 눈 세상을 만들었고, 그 반가움 또한 내일의 출근 걱정을 잊게 할 만큼 큰 기쁨이었다.
일상을 흐린 눈으로 보지 않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간의 정면을 마주하는 일. 새로운 일들을 하면서 그런 게 조금씩 습관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내일의 하루가 오늘의 하루와 같지 않기에, 눈을 아주 조금씩만 돌려 보더라도 일상에서 반가움들을 여러 개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여러 반가움의 후보 중에 고민했지만, 최근에 흠뻑 맞았던 ‘눈’ 이야기를 담기로 했다.
그리고 결과가 어찌 됐던, 반가움의 순간을 다시 곱씹고 글로 남길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오늘의 한 걸음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여기서 눈을 흠뻑 맞자
“눈 온다!”
눈은 추위를 싫어하는 내가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다. 문득 창 밖을 본 그 날 저녁, 밖에는 눈이 이미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내리는 눈의 양만큼이나 기분 좋아진 나는, 남편과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와 집 앞 주차장에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뒤이어 나온 주민들은 우리가 만든 눈사람을 보며 함께 즐거워하고 사진을 찍었다.
어느 겨울밤엔 대학교 근처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는 눈이 잔뜩 쌓인 도로를 데굴데굴 구르고 뛰어다녔다. 그렇게 친구들, 교수님과 함께 새벽녘 눈을 흠뻑 맞았다. 그리고 십 년도 넘게 지난 그 겨울을 이젠 모두 다 같은 마음으로 추억한다. 내가 생각하는 반가운 눈 오는 날의 풍경이란 이런 것이다. 함께 눈을 맞는 것. 내리는 눈을 다만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
아버지는 어릴 적 눈이 올 때마다 “눈 온다!”며 이른 아침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마당의 눈 내린 풍경을 창문을 열어 선물하셨다. 내일의 출근길을 걱정하기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더라도 여전히 펑펑 내리는 눈을 반가워하는 사람이고 싶다. 순수하게 눈을 반가워하는 마음으로,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만끽하고 싶다. 우리, 내리는 눈을 마음껏 즐거워하자. 내일의 출근길, 질퍽한 회색 길의 걱정을 하기에 눈 내리는 겨울의 순간은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