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마라톤 직후, 바닥에 그대로 ‘대(大)’자로 뻗었다. 지난 8개월의 시간이 떠올랐다. 항상 열심히 하진 못했지만, 비 오는 날에, 햇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에, 매주 토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뛰고 또 뛰었었다. 풀 마라톤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다. 섭 4(4시간 안에 피니시라인에 들어오는 것)를 노렸던 나에게 4시간 55분이라는 기록은 아쉬울 뿐이었다.
며칠을 근육통과 함께 마라톤을 곱씹어봤다. 주변에서는 완주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마저 퇴색되기 마련이다. 나는 결과가 좋지 못했다는 이유로 빛나는 과정들을 외면하려 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중간에 포기할 이유는 수십 가지였다.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뛰어서라도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달리기 과정에서 고통과 실패를 경험해 왔고, 그것이 내 몸에 조금씩 쌓여나갔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기록을 내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지났다.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다시 뛰는 일들이 남았다. 달리기는 내 인생 곳곳에서 힘든 일에 부딪힐 때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한번쯤은 스스로를 충분히 믿고, 미지의 길이라고, 내 능력 밖의 길이라고 믿었던 길을 달려 나가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달리기가 생활 속으로 서서히 들어왔다. 이제 가까운 거리는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고, 뛰어서 가는 일도 늘었다. 1km 남짓 거리는 5~6분 내외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주변에는 달리기 전도사가 됐다. 달리는 동안 나 자신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살면서 종종 나에게 말을 걸어보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하는 시간들을 자칫 잊어버리고 지낼 수 있지만, 달리기는 그런 시간들을 만들어 주었다. 무리해서 부상을 안고 다니지만 않는다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물론이다.
달리기는 희미한 일상을 생생한 색으로 덧입혀주었다. 일정 거리 이상을 달리면서 느껴지는 고통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고통을 넘어서면, 또 다른 성취와 기쁨이 다가올 것을 알고 있기에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숨이 헐떡거리고, 다리가 뻣뻣해지더라도 다시 숨을 고르고 페이스를 찾아서 달리다 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나 ‘살아있다’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달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도 소중함과 감사함을 갖게 된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까지 나답게 달리는 게 목표다. 대회에서 달리다 보면 장갑을 낀 두 손을 꼭 쥐고, 머리끈을 힘껏 두르고 묵묵히 달리는 어르신들을 보게 된다. 50이 되고, 60이 되어서도 수만 명의 주자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나를 상상해본다. 건강한 무릎과 발목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계속 즐겁게 달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