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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 Feb 19. 2024

휴가 1

그녀와의 재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전지적 심중위 시점'

'심중위 관점에서 바라보는 좌충우돌 군대이야기'


휴가 1

한계장과는 그렇게 전혀 예상 못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사단장은 무슨 이유인지 한계장과 잘 지내라는 이야기와 휴가를 다녀오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독백) "저 양반은 좀 괜찮은 거 같은데 말이야. 왜 이런 사람을 소개해주는지 속을 모르겠단 말이지..."


나는 한계장에 대해서 떠도는 소문이 진짜인지, 돈에 눈이 멀어 인정사정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지, 일명 탈북사업을 벌이는지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막상 면전에서 이것저것 캐묻기도 그렇고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 "중대장님은 몇 기 신가?"(은근슬쩍 말을 놓음)

백: "뭐요?"

한: "아 아니에요. 중대장인데 중위시길래 하하. 많이 좀 도와줘요."

백: "그래서 깐보이나요?"

한: "아이고~ 중대장님 뭐 그런 말씀을 하하. 언제 술 한잔 하시죠~"

백: "술을 못 마십니다."

한: "하하 중대장님이 찐 군인 같고 멋지시네. 하하"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나한테 뭘 도와달라는 건지 뭘 원하는 건지 내주제나 위치가 누구를 돕고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내 앞가림도 어려운데 뭔 개소리인지 일단 두고 봐야 될 것 같다.

백: "아 제가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가야 돼서 이만."

한: "네? 누구를 구해요??"

백: "야 태섭아 가자."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개소리를 핑계로 썩어빠진 레토나를 직접 운전하고 먼지를 풀풀 풍기며 자리를 떠났다. 한계장이 아무리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초면에 너무했나 싶기도 지만 이놈에 성질이 워낙에 지랄 같아서 불편한 자리는 참지 못했다.

태섭: "아 중대장님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백: "야 이거 재밌네~ 하하."

태섭: "갑자기 라이언 일병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백: "당연히 개소리지 인마."

태섭: "아 역시 중대장님은 못 말리지 말입니다ㅠ"



나는 자대에 온 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 가끔 전화할 때마다 괜찮다던 할머니의 말이 신경 쓰이기도 했고, 보고 싶기도 했다. 경의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충청도에 가려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 역시 서울은 서울이구나. 이게 얼마만이냐." 촌놈처럼 서울역 이곳저곳을 끼웃대고 있었다. 그런데 두리번두리번 대다가 나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어디서 많이 봤던 얼굴이다. 10미터 앞에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학창 시절 첫사랑 그녀 소연이임에 틀림없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거짓말처럼 그녀가 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음이 된 채로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잽싸게 가렸다. 순간 그녀의 걸음소리는 내 앞에서 멈춰 섰다. 정적이 흐르려던 찰나에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소: "저기 혹시... 백호 맞지?"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소연이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여전히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바보같이 둘러 댔다.

백: "아 아닙니다. 사람 잘못 보셨나 봅니다. 하하"

소: "백호 아니에요?"

백: "백호는요. 그런 미친놈은 제가 모르죠. 하하"

소: "여기 심백호라고 쓰여있는데요?"

백: "네? 하하 누가 얼굴에 자기 이름을 쓰고 다니나요? 하하."


그때다. 갑자기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

소: "여기. 군복에 이름이 쓰여있어 백호라고."

백: "하하. 눈이 참 좋으시네요. 하하."(여전히 손으로 가리고 있음)

소: "야. 너 진짜. 죽을래?"


그녀와 나는 그렇게 4년 반이 훌쩍 넘어서 바보 같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예뻤다. 우리는 연락이 끊겼던 것에 대해서는 서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마치 옛날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고, 그때의 기억들이 순간순간 떠올랐다.


그녀는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아직 대학졸업을 못했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부산에 일이 있어서 내려간다는 그녀와는 잠깐의 대화가 전부였다.

소: "하나도 안 변했구나?"

백: "너도. 폰 번호 그대로지?"

소: "웅."

백: "연락할게..."

소: "웅."


나는 또다시 바보 같은 말만 되풀이 한채 그녀를 떠나보냈다.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만 계속해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뛰어가서 잡고 싶었지만 왠지 철이 들었는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독백) "왜 보고 싶었다고 말을 못 했을까... 머저리 등신 쪼다 바보 말미잘 같은 놈."


우연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그녀와 나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고, 연락하겠다는 여지만 남긴 채 또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백: "아놔, 기차시간!!"

하마터면 놓칠뻔한 기차에 간신히 올라타고 할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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