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넓게 펼쳐진 어룡저수지 덕분에 아침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가 자욱하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길이 안 보여 논두렁에 머리부터 처박은 적이 있다.
이제는 점점 부대생활에 적응해가고 있고, 가끔은 집 보다도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어딜 가나 적응하게 되나 보다. 처음에는 밤잠을 설치는 날도 많았었는데 이제는 눈을 감았다 뜨면 자동 기상이다.
동네 지리를 익히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씩 돌아보던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고, 혼자 이곳저곳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워낙에 인적이 드물어서 오염이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곳 그야말로 청정지역이다. 맑은 공기가 코끝을 찌르고 숨만 쉬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산소통에 담아서 전역할 때 가지고 가고 싶다.
이럴 때 태우는 담배 한 개비는 그야말로 끝내준다.
"캬~ 역시 이맛이지 죽인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른 새벽부터 좋은 공기를 마시고 이렇게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여기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점점 담배가 늘어가고 있다. 왜 군대만 가면 다들 골초가 되어 전역하나 했더니만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내가 딱 그 모양이 되려나 보다.
"역시 군생활이란 고달프구나."(뻐끔~ 후~)
이제는 눈을 감고도 어디가 어디인지 훤히 알 정도가 된 것 같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부대에서 먹는 아침식사는 그야말로 꿀맛이다. 젠장 오늘은 군대리아다. 난 빵식은 별로다. 입이싸구려 입맛이라서 뭐든지 잘 먹지만 유일하게 이 군대리아만 싫다.어려서부터 할머니가 꼭 밥을 챙겨주셔서 그런가 보다.
태섭: "하나 끓여 옵니까?"
내가 입맛이 없어 보일 때면 태섭이가 라면 하나를 후딱 끓여다 준다. 계란에 참치까지 넣어서 끓여주는데 백종원도 저리 가라다. 역시 눈치하나는 기가 막히는 놈이다.충성심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부하가 많으면 쿠데타도 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전두광이처럼. 우리 사단은 왕년에 전두광이가 사단장을 역임한 부대다. 그래서 아직도 전두광이 사단으로 불린다.
오늘은 우리 부대에 사단장이 순찰을 나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비상이다.
백: "전진! 우리 라이언 부대는 우측으로는 어룡저수지와 좌측으로는 JSA A를 J.. J 아 아.." "와놔 이거 말이 자꾸 꼬인다. 톤은 괜찮냐?"
태섭: "멋지십니다. 꼭 성우 같지 말입니다.헤헤"
백: "성우 쌈 싸 먹는 소리 하네. 오래간만에 긴장 타니까 살아있는 거 같고 좋은데?"
갑자기 행정반에 울리는 전화
태섭: "통신보안. 전진! 네 네 알겠습니다 전진!!"
"중대장님 사단인데 오늘 어룡저수지 통문 앞 소초로 나오신다고 합니다."
백: "여기 말고?얼마나 남았지?"
태섭: "두 시간 전입니다."
백: "빨리 가자."
우리는 어룡저수지로 도착했다. 평소와 다를 거 없이 평온한 분위긴데 나 혼자 마음이 급했다.
백: "야야 저 지저분한 것들 다 뭐야. 안 보이게 짬 시키고 빨리빨리."
상황판을 비치하고 지휘봉을 잡고 혼자 연습한 대로 떠들어댔다.군대는 보여주기가 전부 같다. 쓸데없이 찾아와서 전투력을 낭비하고 이게 맨날 뭐 하나 싶다.
소초병: "사단장님 오십니다!"
백: "전진! 라이언부대 중대장입니다.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저 우측 보이는 곳이..."
사단장: "어 됐어 됐어하지 마 고생이 많네. 자네 얼굴 보러 왔어."
(독백) 이거 웬걸. 생각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멋진양반일세?
사단장: "올 때가 된 거 같은데."(작은 소리로 혼잣말)
그때 마침 검은색 에쿠스 한대가 먼지를 폴폴 풍기면서 도착하더니 한 덩치 하는 험상궂게 생긴 누군가가 내렸다.
(독백)"아 놔감히 어디라고."
나는 다가가서
백: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먼지를 그렇게 (콜록콜록) 누구십니까?"
사단장: "어. 왔는가?"(반가운 목소리로 반긴다)
한: "아이고~ 사단장님 전진~"
사단장: "중대장 이리 와서 인사해 여기는 한덕규 어촌계장이라고. 그리고 이쪽은 얼마 전에 부임한 중대장."
도대체 언제쯤 보나 했더니만 이렇게 급만남을 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었다.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미궁 속의 한계장을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보게 되었고 인사까지 나누게 되었다. 이미사단장과는보통사이가 아닌 것으로 보아 역시 보통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꼭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놀부같이 생긴게 영 밥맛없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