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끄적 Mar 02. 2024

휴가 3

어설픈 도원결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전지적 심중위 시점'

'심중위 관점에서 바라보는 좌충우돌 군대이야기'


휴가 3


(독백) "휴가 참 암울하고만. 장비 같은 사람하고 휴가를 함께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걸..."


나는 시렁대며 어느덧 문산읍네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천국. 민간인 보다 군인이 더 많고 시골틱 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동네다. 한적한 부대에만 처박혀 있다가 가끔 나올 때면 마치 여기가 서울시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같이 서울을 갔다 올 때면 영락없는 시골동네다.


저 멀리 덩치가 산만한 사람이 걸어오면서 반갑게 손을 흔든다. 험악하게 생겼지만 그래도 밉상은 아니다.

(독백) "역시 장비 같단 말이지."


황: "전진~ 잘 다녀오셨습니까? 중대장님"

백: "아. 하하 그럼요~끝내주는 휴가였죠."

황: "가시죠. 맛 죽이는 집 있습니다."


나는 황중사를 따라 술집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붉게 물든 노을에 분위기는 이미 취할 것 같았다. 골목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다 보니 지금껏 본 술집 중에 가장 허름한 집이 눈에 띄었다. 맛은 아직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일단 허름한 걸로는 반은 먹고 들어갔다.

 

백: "와, 이런 집이 있네요. 분위기 죽이네요."

황: "하하, 맛은 더 죽입니더."

백: "그러다 우리 진짜 죽는 거 아닌가요? 하하"

황: "살아서는 못 나가는 집입니다. 하하"


시덥지 않은 꼬리에 꼬는 말로 서로 싱거운 말장난을 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황중사의 단골집인 모양이었다. 부산 사나이답게 바다음식을 좋아하는 황중사는 알아서 척척 주문을 하였다.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굴찜과 전어회에 전어구이까지 술상에 가을냄새가 물씬 풍겼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먹자고 달려든다.


황: "중대장님 한잔 하이소."

백: "캬~ 바로 이맛 아닙니까~"


안주가 나오자 황중사 말대로 맛이 진짜 죽였다. 술이 술술 들어갔다. 우리는 그렇게 얼큰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역시 남자들의 취중진담이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보다 열 살이나 많았던 황중사는 사병으로 입대해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나와 같이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안정적인 군인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 지금도 천직으로 여기고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장교와는 거리를 두는 성격이라 지금까지 친하게 지냈던 장교는 단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장교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친해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제 내가 두 번째 친한 장교가 되나 보다. 나를 보면 이상하게 동정심이 생기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허당끼 때문에 더욱더 정감이 간다는 말이 웃기기도 하였다.


백: "형님~ 한잔 하시죠."

황: "에헤 중댐요~ 그래도 그건 아닙니다."

백: "한참 동생인데요 뭐 하하."

황: "에헤 아닙니다 아닙니다. 원샷? 하하"


때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태: "전진! 중대장님 어디십니까?"

백: "응. 여기로 와. 여기가 어디냐면..."


태섭이도 이번 내 휴가에 맞춰 휴가를 썼다. 태섭이 역시 이 술자리를 위해 아까운 휴가를 하루 보내기로 하였고, 뒤늦게 합류한 것이다.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백: "이제 태섭이도 왔으니 거국적으로 한잔 하시죠."

태: "꼭 무슨 도원결의라도 하는 거 같습니다~중대장님"

백: "아, 도원결의?"


나는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독백) "어디 연장 없을까나."


백: "여기요~ 혹시 바늘 있을까요?"

종업원: "네? 바늘이요?"

백: "제가 좀 체한 거 같아서요. 아이고 배야~"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 따른 후 나는 바늘로 손끝을 따서 핏방울을 똑똑 두 방울 떨어뜨렸다.


백: "자, 이제 다들 한 방울씩 하하."

황: "에헤 중댐요. 아픕니더.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워가꼬"

태: "아, 아픕니다. 아아"

백: "하하. 남자들이 엄살은~"


우리는 피가 섞인 소주를 한잔씩 나눠마셨다. 어려움을 함께하며, 마음만은 형제가 되겠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어설픈 도원결의를 하였다. 마치 복숭아나무 아래의 유비 관우 장비처럼... 술 먹다가 뭐 하는 짓이냐고 하더니만 다들 순순히 응해준다. 분위기는 극치에 달했다. 술기운도 이미 가득.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 모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는 거다. 우리 부대원들 또한 언제부터인지 점차 부모님이 안 계시는 그런 청년들만 배치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황중사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래서 부대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죽음들이 조금은 수월하고 조용히 묻힐 수 있었다는 사실을... 무슨 실미도도 아니고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부대 인근에 들리는 소문과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서 북한말을 쓰는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많이 들린다. 문산읍네는 이미 남북통일이 되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만큼 탈북자가 많다고 한다.


백: "이모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종업원: "내래 이북... 아 여 여 연변에서 왔지요. 연변"

백: "저분도요?"

종업원: "예 예. 저...저분도 여 연변."


점점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갑자기 어촌계장 계장이 생각났다. 들리는 소문의 탈북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한계장의 진실은 언제쯤 파헤칠 수 있을지...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술잔은 구멍이 났는지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었고, 쌀쌀한 새벽 2차, 3차 4차 오가는 사람들이 없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휴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