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끄적 Mar 09. 2024

한계장의 음모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전지적 심중위 시점'

'심중위 관점에서 바라보는 좌충우돌 군대이야기'



한계장의 음모


밤새 추적추적 비가 내리더니 유난히도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다. 이제는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이 동네는 전방이라 그런지 겨울이 가장 빨리 오고 봄은 가장 늦게 온다. 날씨 탓인지 지역 탓인지 아니면 개구리 군복 탓인지 겨울은 왜 이리도 춥고 여름은 더운 건지 원... 군인들의 비애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짙은 안개로 체감상 가시거리는 2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흐린 날씨 덕에 안개가 걷힐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밤새 어룡저수지 통문 경계초소에서는 미상의 물체가 확인되었다는 보고가 연신 상황실로 들어왔다.


TOD(Thermal Observation Device, 열영상장비) 감식 결과 북쪽에서 떠내려오는 부유물들로 확인되었다. TOD는 생물과 물체의 적외선을 감지하여 영상 정보로 변환하는 장비로, 주로 감시·정찰 등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된다.


다행히도 비는 그쳤지만 저녁부터 또다시 비가 예고되어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여느 때 보다 조금 더 일찍 눈이 떠졌고, 곧바로 어룡저수지로 향했다. 옛날에는 이런 날씨를 틈타 남하하는 간첩들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없으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며칠 전에는 북한군 한 명이 우리 부대 인근 백학산을 통해서 자진 월남 하였다. 처음에는 우리 군이 경계작전을 펼쳐 북한군을 무사히 월남하도록 유도했다고 떠들어 댔으나, 알고 보니 북한군 혼자 쥐도 새도 모르게 GP(Guard Post, 경계초소)를 뚫고 넘어와 GOP(General Out Post, 일반전초) 철책선을 똑똑 두드렸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우리 사단 전체가 뒤집혔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라고 했던가 난리가 날만도 하다. 군대라는 곳은 묵묵히 소같이 열심히 일만 하는 곳이라기 보단 때로는 없는 걸 지어내는 보여주기식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90% 이상이 보여주기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군대에 뼈를 묻을 사람한테는 말이다. 하지만 나같이 전역을 학수고대하는 사람에게는 거리가 먼 얘기다.


어룡저수지 경계초소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분위기에 안심이 되었다.

경계병: "전진! 근무 중 이상무."

백: "특이사항 없지?"

경계병: "없습니다."


(독백)"그래 우리 부대야 뭔 일이 있을 게 있나."

여전한 안갯속에 멍하니 부대로 걷고 있는 도중 그때 난데없이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그것은 내 머리를 타고 어깨 위로 떨 졌는데, 허여물근한 것이 새 똥이었다.

백: "아놔, 어떤 새끼야? 새 새끼네.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깐 별."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한계장이었다. (독백)"아놔 이 양반한테 전화 오려고 새똥 맞았나. 역시 나하고 안 맞는다니깐."


수화기 너머로 반가운 척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아이고~ 중대장님~ 잘 지내십니까?"

백: "별로 잘 못 지냅니다. 새똥이나 처맞고."

한: "네? 하하. 오늘 저녁식사 좀 대접하려고 이따 오시지요~"

백: "제가 왜요?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연거푸 사양을 했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은 마주할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하였다. 또한 지난번 초면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던 것이 마음에 걸려 못 이기는 척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때쯤 나는 장단마을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태섭이는 밖에 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커다란 대문이 열리는 기와지붕에 연등이 켜져 있는 마치 이상한 요정집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을법한 그런 집이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검은색 양복을 입은 경비인력들이 꽤나 많이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하나같이 꼭 조폭처럼 한 덩치 하는 인력들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복을 입은 마담 같은 여자가 반겨준다. (독백) "요즘도 이런 집이 다 있나."


한: "아이고~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한: "야야 뭣들하고 있냐. 인사드리고 술도 따라 드려야지."


장구나 가야금은 없었지만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요상한 기생 술집 같은 곳에 어리둥절했다. 낯선 곳에 낯선 한계장과의 술자리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잔 두 잔 술을 마시고는 한계장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백: "하실 말씀이 뭡니까?"

한: "에헤~ 중대장님 뭘 그리 급하실까."

한: "중대장님 단기 복무시던데 시간 금방가요. 전역하시려면 돈 좀 버셔야지요? 하하"


한계장은 갑자기 술상 밑에서 검은색 가방을 하나 꺼내어 상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열어보라고 한다. 상자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만 원짜리가 다발로 꽉 차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가방을 그대로 덮어버렸다.


백: "아니, 이런 걸 왜 주시는 거죠? 됐습니다."

한: "에헤~ 제가 중대장님한테 이런 거 하나 못 드립니까 하하."

한: "중대장님이 저를 도와주시면, 이런 거야 수없이 드릴 수 있지요 하하."

백: "됐습니다."


한계장은 다른 뜻이 전혀 없다고 한다. 오직 어룡저수지에서 어로인들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는 것뿐이라고 한다. 한계장이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잠시 비운사이 그 틈을 타 옆앉아있던 종업원이 말을 걸어온다.


여: "저... 저 좀 도와주시라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설마설마했더니만 역시 수상한 곳이었다. 이곳의 여 종업원들은 전부 다 북에서 넘어온 사람들뿐이었다.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다. 자유를 찾아 남으로 왔지만 자유는 고사하고 여기에 갇혀 일만 하며, 마치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백: "어디로 넘어왔나요?"

여: "어룡저수지요."

백: "어떻게요?"

여: "비 오는 날..."


밖에는 어느덧 다시 추적추적 비가 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덜컥 불안한 마음에 나는 자리를 뜨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빠르게 일어나 술집 밖으로 나갔다. 한계장이 나를 보았는지 계속해서 나를 불러댔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서 차에 올라탔다. 백미러로 한계장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백: "태섭아 빨리 가! 빨리!!"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휴가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