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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 Mar 12. 2024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슬픈 이별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오랜만에 푹 잔 거 같기도 하고, 깊은 겨울잠을 잔 거 같기도 하고 몸이 나른했다. 비몽사몽 살며시 눈을 뜨자 시커먼 얼굴에 남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름 아닌 태섭이었다.


태: "중대장님! 중대장님? 정신 좀 드십니까?"


달콤한 단잠을 확 깨우는 걸걸한 태섭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꿈이었던 건지 아직도 재수 없게 술집의 한계장 모습이 아른거렸다.


백: "(하품하며) 아~~ 잘 잤다. 왜 그래 인마?"

백: "아놔, 꿈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는데."

태: "중대장님. 지금 벌써 오후 13시입니다."

백: "뭐??"


꿈인 줄 알았지만 꿈이 아니었나 보다. 내 팔에는 똑똑 수액이 떨어지는 링거가 꽂혀있었다.


태: "저는 중대장님이...(흑흑)."

백: "짜식. 남자새끼가 질질 짜기는... 이건 뭐냐?"


태섭이는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줬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천히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뛰어서 차에 오르자마자 나는 기절을 한 건지 잠이 든 건지 그대로 뻗었다고 한다.


태섭이는 내가 술을 많이 마신줄 알고 술에 취한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침에 아무리 깨워도 도무지 일어나지 않자 지대장이 왔었고, 나에게서 수면제 성분의 졸피뎀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술을 딱 두 잔밖에 마시질 않았다. 평소 주량이 소주 두 병은 거뜬히 마시는 걸 보면 술에 취할리는 없었다. 술을 마시기 전 옆에 앉아 있던 여 종업원이 곁눈질로 뭔가를 전하려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술잔에 뭔가를 탔던 것이 분명하다.


백: "아놔, 이 개새끼를 진짜."


인근에 떠도는 한계장에 대한 소문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듯하다. 나는 흩어진 퍼즐을 거의 다 끼워 맞춘 듯했다. 어쩌면 한계장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뿐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면 이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백: "야, 황중사는??"

태: "오늘 아침부터 안보입니다."


황중사의 전화기는 꺼져있어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링거를 뽑아 던지고 황중사를 찾으러 갔다. 간밤에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그새 그쳤는지 임진강 수위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어 보였다. 황중사는 전날 야간 당직이었다. 나는 태섭이와 함께 황중사 집이며 숙소며 가볼 만한 곳들은 샅샅이 뒤졌다.


간밤에 어룡저수지 통문에서 상황보고한 기록이 수차례 남아있었다. 상황병 놈은 졸은 건지 정신이 나간 건지 기억이 안 난다고만 한다. 중요한 건 황중사가 야간에 밖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상황보고가 들어온 건들이 한두 건이 아니었다.


어로활동(고기잡이)이 끝난 이후로 야간에 늦게 까지 남아있던 어로인들과 경계병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계병은 상황실에 보고를 했었고, 수차례 반복되자 황중사가 어룡저수지 통문으로 쫓아 나왔다고 한다. 야간 상황병을 불러냈다.


백: "야, 사단에 보고했어?"

상황병: "보고 했습니다!"

백: "그런데?"

상황병: "....."

백: "그래서 어쨌냐고?"(버럭 화를 내며)


상황병은 여전히 묵묵 부답이었고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백: "아놔, 얘 왜 이러냐? 얼빠진 것처럼"

태: "어룡저수지 통문으로 가봅니까?"


어룡저수지 경계근무자들로부터 야간에 있었던 일들을 캐묻기 시작했다. 어로인의 어로활동이 끝나고 한참 후에도 남아있던 어로인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몇 차례 경고방송으로 경고를 했지만 듣지를 않았고, 경계병들이 사실을 상황실에 보고를 했었다.

 

상황실에서는 사단에 보고를 했지만, 사단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었고 어로인을 협조하여 내보내라고만 했던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황중사가 어룡저수지 통문 경계초소를 찾아왔고, 어로인들과 한참 동안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경계병: "어로인의 마대 자루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백: "뭐?? 고기?"

경계병: "아닌 거 같았습니다..."

백: "그럼??"


결국에는 어로인들을 내쫓았고 황중사가 어로인을 쫓아가는 뒷모습을 봤다는 게 경계병 말의 전부였다. 태섭이와 나는 어룡저수지 수문을 따라 한참 동안을 헤맸다.


그때였다. 군복을 입은 부풀어 오른 시신이 물에 둥둥 떠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길 바랐다. 이제껏 나의 예감은 하나같이 틀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시신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더뎌졌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고, 불안한 마음은 극도록 심해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는 눈물이 또르르 흐르고 있었다.


백: "태섭아, 아니지? 내가 잘못 본 거지...?"

태: ".....(흑흑)"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잠시 후 세상을 잃은 듯 대성 통곡하였다. 가뜩이나 체구가 좋았던 황중사의 시신은 퉁퉁 불어 마치 풍선 같았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황중사는 수풀에 걸려  위에 둥둥 뜬 채로 발견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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