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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 Mar 16. 2024

황중사의 선물

원하고 원망하죠


황중사의 선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황중사를 발견하고 충격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나는 쓸쓸히 황중사의 빈소를 지켰다. 부모님을 잃고 나서 가까운 사람을 또다시 이렇게 보낸 적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도 크게 지었던 건지 모르겠다. 하느님을 원망하고 부처님을 원망하고 천지신명을 원망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정신줄을 놓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더욱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황중사도 원인불명의 개인사로 자살을 했다고 판정 난 것이었다. 황중사의 풀지 못한 수수께끼도 역시 나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중사를 그렇게 떠나보내고 한동안은 얼이 빠진 채로 생활했다. 그나마 태석이가 옆에서 쓸데없는 말이라도 걸어주고 웃겨주고,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노력해 줘서 천천히 일상을 되찾아갔다.


태: "중대장님? 황중사 유품도 이제 정리해야 될 거 같습니다."

백:(한숨)"휴... 그러자..."


새로운 행정보급관이 부임하기 전에 황중사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한동안 닫혀있던 행보관실을 열었다. 골초였던 황중사의 방에는 아직도 황중사의 냄새들로 가득했다. 여전히 황중사의 걸걸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갑자기 슬픈 감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백: "애들하고 깨끗이 정리 좀 해. 나 간다."

태: "넵!"


황중사가 없어진 거 빼고는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내 담배량이 점점 늘어가는 거 빼고는... 마치 황중사의 몫까지 내가 피워대는 거 같았다. (독백)"이놈에 줄담배. 무슨 굴뚝도 아니고..."


국방부 시계도 돌아간다지만 요즘따라 너무도 더디게 느껴진다. 이러다가 반쯤 실성한 채로 전역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오는 건 한숨뿐이요. 걱정은 태산이로다.(독백)"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그때였다 태섭이가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나를 부른다.


태: "헥헥.. 중대장님 헥헥..."

백: "뭔데 호들갑이야?"

태: "헥헥.. 이거..."


태섭이 손에는 까만색 노트 하나가 쥐어있었다. 열어보니 노트에는 황중사의 글씨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황중사의 일기장이었던 것이다.


백: "이거 어디서 났어??"

태: "헥헥... 책상 서랍입니다."

백: "야야, 고... 고생했다. 나 찾지 마라."


나는 아무도 없는 탄약고에 앉아 황중사의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그 일기장은 황중사가 우리 부대에 부임하면서부터 작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독백) "이 양반 생긴 거하곤 다르네. 뭔 일기도 썼대."


-황중사의 일기 내용-

00년 00월 00일

부대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일주일 새 부대원이 두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살다 살다 이런 이상한 부대는 처음이다. 어제는 부대원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도대체 아군은 없고 적군만 있는 건가. 보고할 곳이 없어 보인다.


00년 00월 00일

안개가 자욱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로인들이 마대자루를 옮기는 것을 보았다. 그 마대자루에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쇼킹하게도 탈북자들이었다. 안개 낀 날과 비 오는 날마다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00년 00월 00일

나는 숨어서 어로인의 통화내용을 엿들었다. 회장님 회장님 하는 것을 보니 한계장과 통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계장이 탈북자들을 어딘가로 보내라고 지시하는 듯하다. 감금을 시키고 일을 시킨다는 소리가 들린다.


00년 00월 00일

한계장과 사단장이 장단마을 술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형님 형님 하는 것이 보통사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걱정 말라는 사단장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술집을 나왔다.


00년 00월 00일

어룡저수지 통문 경계초소에서 어로인과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한다. 어로인의 마대자루가 수상하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또 들어있나 보다. 사단에 보고를 했더니 자꾸만 짬을 시킨다. 통문으로 직접 가야겠다. 불길하다.


(독백)" 와... 대박"


그야말로 대박 그 자체였다. 황중사도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혼자서 끙끙 앓았던 흔적들이 일기장에 보인다. 이제는 모든 것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다.


무엇보다도 값진 선물을 남기고 간 황중사였다. 한시름 놓았다. 황중사는 나에게 마무리만 남겨놓고 그렇게 떠났나 보다.


(독백) " 증거를 포착하자... 고맙습니다. 형님..."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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