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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 Mar 22. 2024

첩보작전

오늘이 제삿날


첩보작전


며칠 전부터 정체 모를 녀석들이 나를 몰래 따라다니는 것을 느낀다. 무슨 낌새를 알아차린 건지, 나는 한계장의 똘마니들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쫓는 건지 어처구니가 제대로 없다. 한 번만 제대로 걸리면 아주 반쯤 죽여놓으려는 참이다.


황중사의 일기장을 토대로 한계장의 증거를 포착해야만 한다.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매일 같이 같은 생각뿐이다. 평소에는 웬만하면 꿈도 꾸지 않는데 요즘따라 황중사가 자꾸만 꿈속에 찾아온다.  (독백) "증거... 증거"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나도 황중사를 따라 황천길로 갈지 모른다. 나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며 보통일이 아니다. 집에 혼자 계신 할머니 생각이 절로 다. 내가 무사히 전역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삶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중사에 대한 복수까지도 내 목숨을 악착같이 지켜야 할 명분이 생겼다.


이미 주위의 대부분 사람들은 한계장이 포섭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돈이라면 안될 것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딱한 사람... 저 녀석 밖에는 없어 보인다. 나는 태섭이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백:"태섭아. 너는 나 믿지?"

태:"아 중대장님. 두말하면 입 아프지 말입니다."

백:"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속닥속닥 이러쿵저러쿵 얄리얄리 얄라리 얄라)

나는 모든 사실과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태섭이에게 이야기해 줬다.


태:"지... 진짭니까?"

백:"혹시라도 내가 잘못되거나 그러면... 우리 할머니 좀 부탁한다."

태:"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요즘따라 놀랄 일이 많아서인지 태섭이는 이네 말귀를 알아듣는다. 우리는 그리 똑똑하지 않은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웠다.


태:"중대장님. 너무 간단한 거 아닙니까?"

백:"뭔데?"




우선은 수상해 보이는 어로인들을 뒤쫓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날마다 지키고 있는 어룡저수지 통문 경계초소에는 철저한 경계근무대신 느슨한 경계근무령을 내렸다.


백:"야야, 피곤하지? 졸리면 좀 졸고 그래."

경계병1:"네. 알겠습니다! 네...?" (어리둥절)

경계병2:"야야... 뭐 잘못 드셨대냐..." (소곤소곤)


안개 낀 날과 비가 오는 날에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는 분위기다. 우리는 미행을 해서 어로인들의 집합소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카메라와 녹취기는 필수, 군복을 집어던지고 레토나를 대신할 트럭도 구했다. 내 신분이 군인인 건지, 경찰인 건지, 탐정인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도 헷갈리게 되었다.


평소에는 궂은날도 많더니만 요즘따라 왜 이리도 날씨가 좋은 건지 원... 매일마다 습관적으로 날씨를 확인하게 되었다. 하루빨리 비가 내리도록 기우제라도 지내야 될 판이었다.


태: "와~ 중대장님!!"

백: "왜??"

태: "드디어~ 내일모레 비가 오려나 봅니다~!"

백: "오~~"

백: "내일모레가 썩어빠진 네놈들 제삿날이다 하하하."


나는 모처럼만에 호탕하게 웃어댔다. 억지웃음 같았지만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누구의 제삿날인지는 그때 가봐야 될 것만 같았다. 제발 네놈들이길 바랄 뿐... 신은 언제나 내편이길 바랄 뿐이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란 바로 이런 기분이 아닐까.


이틀 후 모처럼 만에 진짜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상예보대로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결전의 날이 밝았다. 간밤에 밤잠을 설쳐서 그런지 정신이 그리 맑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유서를 쓰는지 그 기분을 아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얀 종이 위에 펜대를 잡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음 생이 있다면 부모님이 계신 평범한 집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떠오르는 건 오직 할머니 얼굴뿐, 할머니께 글을 남겼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아침 일찍 태섭이와 나는 어룡저수지로 향했다. 수풀이 우거진곳에 차를 대고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트럭에 커다란 마대자루가 실린 어로인들을 뒤쫓을 것이다.


백:"야, 졸았냐?"

태:"아 중대장님 쫄면 쫄면 먹고 싶지 말입니다 헤헤."

백:"이따가 쫄면 먹자."

태:"떡볶이도 말입니다 헤헤."


그때다. 두컴컴해질 무렵 커다란 마대자루가 실린 트럭이 지나간다. 우리는 간격을 유지한 채 천천히 트럭을 뒤따랐다. 무슨 첩보영화에나 나올법한 일을 내가 하고 있다. 원래 긴장하지 않는 성격인데 가슴이 미치도록 뛰었다. 핸들을 잡은 손에도 등줄기에도 코잔등에도 식은땀이 났다.


트럭은 역시나 장단마을 기와집의 요정집으로 향했다. 뒷마당에 도착하더니 차가 멈추었다. 내리는 비가 눈앞을 가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우산을 쓸 수도 없었고 옷은 이내 젖었다. 비에 젖은 생쥐처럼 풀숲에 엎드린 채 트럭만 지켜보았다.


어로인들이 마대자루를 열자 그 속에는 예상대로 사람이 들어있었다. 탈북 여자들이었다.


백:"야, 카메라"


우리는 숨 죽인 채 그 광경을 카메라로 연신 찍어댔다. 이제는 증거도 잡았겠다 속으로 나이스를 외칠 때쯤 갑자기 무언가가 날아왔다.


누군가가 뒤통수를 묵직한 둔기로 내리쳤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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