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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정 Mar 06. 2016

도심 속 유목민의 설움

메뚜기 같은 삶을 사는 청춘들

사실 오늘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발생하면서 모든 건 물거품이 되고야 말았다. 지금부터 그간의 파란만장한 일들을 풀어놓고자 한다.


내집은 어디에


이사갈 집을 찾아라!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이 곧 계약만기가 되어 올해 초부터 열심히 이사 갈 집을 찾았다. 처음에는 따로 살까도 생각을 했었지만, 동생은 둘 중 하나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같이 살자고 제안을 해왔고 그 뜻에 따라 둘이 살만한 투룸 전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운 좋게도 성북동에 시세에 비해 2~3천만원 정도가 저렴한 집을 발견하게 되어 기분 좋게 계약을 하게 됐다. 처음엔 내가 가진 돈에 전세자금 대출을 내서 들어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신고 된 소득이 많지 않아서 필요한 금액을 대출받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대출엔 직장인 보단 사업자가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결국 외국계 회사의 엔지니어로 근무를 하고 있는 동생이 전세자금 대출을 받기로 했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로하신 건물주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출 심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예감적중


천지신명의 장난


3일 전, 언제나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은행에서 건물주가 쓰러져 본인 확인이 안되기 때문에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사 날짜도 받아놨고, 지금 사는 집에 들어올 사람도 정해진 마당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천지신명이 하신 일이기에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착하기 그지없는 내 동생은 화는커녕 오히려 건물주 며느리에게 "할아버지께서 쓰러져 정신이 없을 텐데 서류요청으로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다."는 소리까지 했다고 하니, 인정상 위약금 청구를 하기에도 참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내 집 마련의 꿈, 언젠가는 이뤄지겠지?


다시 집 찾아 삼만리


어쨌든 벌어진 일이기에 대책을 찾아야만 했다. 동생은 휴가를 냈고, 나는 급히 마무리하고 있던 일을 보류시킨 채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난 1월에 처음 집 문제를 논의할 때처럼 같이 사느냐 마느냐 부터 시작을 했다. 집을 알아보다 지친 동생은 대출을 더 받더라도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자고 우겼고 난 여건에 맞춰서 살자고 했으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가 않았다.


때마침 말도 안 되는 매물이 나타났다. 성북동에 10평 원룸이 전세 4,800만원에 나온 게 아닌가. 난 대출 없이 그 집을 계약하고 혼자 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동생 때문에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결국 방 2~3개짜리 집을 조금만 더 보자고 조르는 동생을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와 달리 눈이 높은 동생은 결국 방 3개에 거실이 원룸하나보다도 큰 집을 계약해서 같이 살자며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성북동 꼭대기라는 것과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결국 보증금에 내 돈을 보태고 동생이 가진 돈과 나머지는 대출로 충당을 해서 그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남은 절차도 있고, 이사 날짜도 뒤로 미뤄진 터라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서울살이를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같은 집에서 6년을 살아온터라 그간 집을 구하는 것과 이사의 어려움을 잊고 살았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 도심 속 유목민의 설움을 아주 제대로 알게 됐다. 동생과 집을 보러 다니는 내내 나도 모르게 "집 없고 돈 없는 게 이렇게 서러운 일인 줄이야!"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했으니 말이다. 제발 이번만큼은 모든 일이 무탈하게 잘 진행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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