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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Sep 20. 2017

짧더라도 정확하게 쓰세요

문체와 태도

많은 글쓰기 책들이 짧게 쓰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만연체보다는 간결체가 좋다’는 식이다. 그러나 문장의 길이보다 말하려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짧아도 부정확한 문장이 있고, 길어도 정확한 문장이 있다. 문장의 정확성은 문장의 길이와 상관없다. 짧은 문장도 부정확할 수 있고, 긴 문장도 정확할 수 있다. 정확하게 쓰려다 보니 문장이 짧아지기도, 길어지기도 할 뿐이다. 다만 글쓰기 초보들은 짧게 쓸 때, 그나마 정확하게 쓸 수 있으므로 짧게 쓰라고 하는 것이다. 질문을 정확히 사용할 수 있으면, 언젠가는 길고 정확한 글을 쓸 수 있다. 짧게 쓰면 될 일인데, 문장이 짧으면 못 쓴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 김밥, 짜장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칼국수, 육개장, 짬뽕, 우동도 먹었다. 부대찌개나 닭볶음탕, 쌈밥은 두 사람 이상이라야만 먹을 수 있다.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혀 있다. 나는 허름한 식당에 친밀감을 느낀다. 식당의 간판이나 건물 분위기를 밖에서 한번 쓱 훑어보면 그 맛을 짐작할 수 있다. 가게 이름이 촌스럽고, 간판이 오래돼서 너덜거리고, 입구가 냄새에 찌들어 있는 식당의 음식은 대체로 먹을 만하다. 이런 느낌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어긋나지 않는다. 낯선 지방의 소도시에 가서도 나는 간판의 느낌으로 밥 먹을 식당을 골라낸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도입부다. 옮긴 부분은 10문장이고, 띄어쓰기 포함 365자다. 한 문장당 평균 36자다. 짧다. 두 번째 문장, 세 번째 문장, 다섯 번째 문장, 아홉 번째 문장에는 주어도 없다. 주어를 생략하는 한국어의 특징을 잘 활용한 글이다. 나는 문장을 길게 쓰는 학생들에게, 저자를 숨긴 채 윗글을 보여주고, 어떠냐고 묻는다. 대부분 잘 읽힌다고 말하지만, 독서 경험이 부족하거나 문장 자체를 어떻게 쓸 줄 모르는 학생 중에는 간혹, 이상하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그 학생들에게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주면, ‘그게 누군데요?’라고 묻거나 ‘상록수?’하는 학생도 있다(『상록수』의 저자는 김훈이 아니라 심훈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의 차이를 느끼게 하려고 윗글을 복문으로 고쳐 써서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부대찌개나 닭볶음탕, 쌈밥처럼 두 사람 이상이라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 대신,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 김밥, 짜장면을 먹어왔고, 칼국수, 육개장, 짬뽕, 우동도 먹었는데,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혀 있다. 나는 식당의 간판이나 건물 분위기를 밖에서 한 번 쓱 훑어보면 그 맛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허름한 식당에 친밀감을 느끼곤 하는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가게 이름이 촌스럽고, 간판이 오래돼서 너덜거리고, 입구가 냄새에 찌들어 있는 식당의 음식은 대체로 먹을 만하다는 느낌은 대체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낯선 지방의 소도시에 가서도 간판의 느낌으로 밥 먹을 식당을 골라낸다.(2문장, 372자, 문장당 186자)


10문장이었던 글이 2문장으로 줄었지만, 문장당 글자 수는 다섯 배 이상 늘었다. 두 글을 함께 보여주고, 어느 쪽이 읽기 편하냐고 물어보면, 학생들은 예외 없이 첫 번째 글을 택한다. 우리는 대부분 큰 노력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좋아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쉽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특히, 글쓰기 초보들은 가능하면 짧은 문장으로 쓰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짧은 문장으로 여러 문장을 쓸 수 있다면, 긴 문장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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