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할아버지 그만 가시면 안 돼요?

(부끄러운 추억)

by 구슬 옥

9월 17일 오스 비달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 12.3km

빠라모(Villadangos del Paramo)에서 아침 7시 40분에 출발했다. 주일인데 미사를 어디서 참례할 수 있을까 걱정했고, 할 수 있다면 오르비고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여전히 고속도로 옆을 통과하는 길이었지만 차들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었다. 주위 풍광 역시 특별한 것은 없는, 옥수수를 심었거나 잡초들로 무성한 너른 들판이거나 했다.


중간에 산 마틴을 지나면서 예전에 묵었던 알베르게의 Bar에서 카페 꼰 레체를 먹고 화장실 들렸다 출발하면서 2년 전에 이곳에 왔던 일이 생각났다. 어제 선택하지 않은 또 하나의 화살표를 따라 우회도로를 걷다가 정원이 있는 알베르게를 겸한 bar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보통은 알베르게에 들어가야 할 시간에 우리는 더 걸어가 다음 마을에서 쉬자고 하면서 기분 좋게 마을길을 걸어갔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마을은 없고 날도 어두워지자 지치고 불안했다. 계속 걸으며 찾아도 까미노 화살표시는 보이지 않고 민가도 없는 시골길만 이어졌다.


지병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데 점심 먹으며 한잔한 와인 탓에 기분이 좋은 남편은 걷다 보면 마을이 나올 거라고 웃으며 계속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길이 갈라지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해야 되는데 까미노 표시는 어디에도 볼 수 없고, 다행히 한쪽으로 멀리 마을이 보였다. 우리는 오후 늦게 무작정 그 마을의 bar에 들려 근처에 알베르게가 어디쯤 있느냐고 물었었다.


bar에 있는 주인은 소통이 잘 안 되니 손으로 걷는 표시를 하며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비도 오고 시간은 저녁이 되어가고 있어 불안한 마음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해서 이곳 알베르게에 왔었다.


생각해 보면 가족이 함께하고 있어 불안할 것도 없었을 텐데 그저 마냥 태평한 남편을 보면서 나는 왜 그렇게 불안해했는지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감회가 새로워 다시 왔다는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출발했다.


라테 한잔을 먹어 몸이 깨어났는지 발걸음 가볍게 한달음에 오르비고 마을에 도착했다. 튼튼하게 돌로 잘 만들어진, 산티아고 길 중에 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를 걸으며 말을 타고 이 길을 달렸을 중세의 사람들을 그려보았다.


2년 전에는 우비를 입고 물기로 촉촉한 마을과 넓고 긴 돌다리를 보고 감탄하며 서로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순례자들과 '부엔 까미노'를 외치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물이 가득했던 다리 아래가 붉은빛 고운 모래만 있어 그 다리가 이 다리인지 잠시 혼란이 왔다.


봄과 가을의 계절이 주는 풍경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도시의 모습을 바꿔버렸다. 나는 이 다리를 뿌엔테 레리아의 다리로 기억했었는데 얼마 전 레리아 다리를 건너면서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레리아 다리는 좀 더 길쭉하게 둥근 아치 스타일의 다리고, 이곳 오르비고 다리는 평평하고 넓고 엄청 긴 다리다.

오르비 고의 돌다리-우기인 4월에는 강물이 들어와 아치까지 차 올랐었다.

10시 30분쯤 오르비고 다리를 걷고 있는데 성당 종소리가 계속 울린다. 아! 저 소리는! 곧 미사가 있다는 걸 알리는 소리임을 눈치채고 소리가 울리는 쪽을 향해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리가 시작되기 전에 보았던 성당에서 미사가 있을 예정인 것 같다.


역시 마을의 할머니들과 할아버지 그리고 몇몇 젊은 사람들이 성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도 부지런히 들어가 배낭과 스틱을 한쪽으로 접어서 잘 놓고 미사 통 상문을 펴고 준비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나이가 듬직한 신부님이 바삐 들어오시며 미사가 시작되었다.


신부님의 강론은 스페인어로 하시니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전례 순서는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같아서 미사 참례가 어렵지 않다. 함께 미사에 참석한 현지인들과 평화의 인사도 나누고 신부님께 성체도 받아 영할 수 있으니 감사했다.

미사 시작 전에 성가를 연습하는 사람들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신부님은 다음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해야 하신다며 급히 작은 자동차를 타고 떠나신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아직까지는 신자들 수도 많고, 신부님들도 많아서 부족한 교구는 없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도 시간이 지나면 여기 유럽의 성당처럼 될 수도 있을까?


젊은이들의 미사 참례가 점점 줄어들고, 어린 주일 학생들도 학원을 가거나 집안 행사 등에 참석한다고 주일학교를 잘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우리나라도 점점 유럽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지금 한국에서도 군종 신부님들은 여기처럼 여러 곳으로 미사 집전을 하러 가야 돼서 바쁘다는 것을 나도 최근에서야 알았다.

오르비고 마을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니 시간이 1시가 넘었다. 오늘은 여기서 묵으며 마을 구경하자는 남편의 의견대로 10유로에 호스텔을 겸해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호스텔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여행을 왔는지 시끌벅적하다.


남편이 학생들 몇 명에게 이것저것 물으니 처음에는 몇 번 대답해 주다가 귀찮은 듯 이제 가시면 안 되냐고 한다. 귀여운 꼬마들에게 실례를 해서 허허 웃으며 굿바이를 하고 나왔다. 아이들끼리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며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주책없이 대화를 시도한 노인이 부담스러웠을 아이들 생각에 웃음이 났다.


알베르게는 4인실로 2층 침대 2개가 있다. 우리와 독일 여학생 2명이 함께 묵었는데 대학교 1, 2학년 정도로 보인다. 남편이 대학생이냐고 물어보니 자신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직장에 다니고 있고, 지금은 휴가를 내어 걷는 중이라 했다. 내일 새벽에 일찍 출발하는데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며 머리를 말린다. 긴 머리를 샤워 후에 말리기 위해 헤어드라이어까지 배낭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역시 젊은이들이라 배낭여행을 해도 드라이어는 필수품인가 보다. 매우 건강하고 씩씩해 보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1. 모든 길이 다 아름답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