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마다 꽉 차 있던 순례자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입에 랜턴을 물고 조용히 가방을 챙기고 옷을 입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길을 걷는 동안은 누구도 여성, 남성이 아닌 그저 순례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지 때때로 것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 웃통을 내보인 채로 샤워실로 가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처음 알베르게에서 자게 되었을 땐 너무 놀랐는데 지금은 그런가 보다 지나친다. 우리는 저녁에 샤워하고 옷을 다 갈아입은 채 침낭에 들어가 자고 아침에는 일어나 세수와 양치 만하고 겉옷을 입고 출발 준비를 하기 때문에 간단하다.
여기저기 일어나는 소리에 우리도 일어나 먼저 세안실에 가서 준비하고 침대로 돌아와 배낭에 침낭을 개어 넣고, 빨아서 말린 갈아입을 옷 한 벌과 세안 도구 등 필요한 물건을 꼼꼼히 챙겨 넣고, 놓고 가는 물건 없는지 점검을 한 후에 방을 나왔다.
이른 아침 아스또르가는 배낭을 메고 스틱을 손에 들거나 짚고 가는 까미노 순례자들의 발소리와 스틱 소리로 깨어난다. 어제 들어가지 못한 산타마리아 대성당 앞을 지나 까미노 표시를 따라 도시 밖으로 나왔다. 라바날까지는 20.6km로 멀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고도가 850미터에서 1150미터까지 이르는 오르막길인데 다행히 편편한 흙길과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으며 몇 개의 마을을 지났다. 걸으면서 들리게 되는 마을에는 남아있던 지난번 까미노의 추억들이 우리를 반기고 느긋한 현지인 같은 마음으로 주택가 옆에 있는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삶아온 달걀을 꺼내먹고 쉬기도 했다.
까미노 표시인 노란 화살표를 따라 마을로 이어진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말 타고 가는 사람들을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고 경마장이나 아니면 제주도에 갔을 때 목장 근처나 관광지에서 시간당 얼마를 내고 말을 타거나,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말 타는 걸 본 적이 있는 정도인데 산티아고 까미노 길에서는 자주 보게 된다. 오늘도 라바날 마을로 가는 길에 서너 명이 말을 타고 까미노 길을 걷는 것을 보았다.
2년 전 까미노를 걸을 때도 비가 계속 내려 질척거리는 산길을 오르는데 말을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뒤따라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 힘들었다. 말들이 비를 맞으며 사람과 짐을 함께 올리고 가파른 산길을 가느라 길에 말똥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건기라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질척거리는 땅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까미노를 걷는 방법 중에는 말이나 자전거, 오토바이 등 여러 가지 도구를 이용한 다양한 방식들이 있는 듯했다.
말을 타고 까미노를 지나는 사람들
숲길을 지날 때는 중세의 기사 복장을 한 남자가 큰 새를 어깨에 올리고 뭔가를 보여주는 모습도 있었고, 철조망 사이에 나뭇가지로 십자가들을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철조망 십자가 길도 지났다.
까미노 길에서 늘 만나고 생각하게 돠는 십자가를 순례자들은 그렇게 표현해 놓고 갔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쁘지 않아 오후 2시가 조금 지나 라바날에 들어왔다.
마을 초입에는 2년 전 우리가 묵었던 알베르게가 더욱 번성한 듯 야외 테이블이 많이 나와있었다. 남편은 혹시 지난번에 여기 두고 갔던 작은 랜턴의 모양을 설명하며 알베르게 주인에게 보았느냐고 최선을 다해 물어보았다.
말이 통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주인은 모른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남편도 있으리라는 기대보다는 그저 추억의 장소에 오니 생각나서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해 보았을 뿐이다.
라바날 까미노 입구의 알베르게와 식당-2년 전 우리도 여기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우리는 라바날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묵기 위해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갔다. 수도원 옆 알베르게에는 배낭으로 줄이 서 있어서, 우리 배낭도 벗어 줄에 세워놓고 알베르게 옆에 있는 수도원 안내소에 한국 신부님을 뵙기 위해 들어갔다.
그곳에는 약간의 책들과 성물이 있고 한쪽으로 응접실도 있었다. 외국인 신부님이 계셔서, 한국에서 오신 신부님을 뵙고 싶다고 서툰 영어로 말하니 이미 우리를 보는 순간 알고 있었던 듯 2시간 뒤에 오면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마침 알베르게가 열려서 줄에 가서 배낭을 다시 메고 접수하고 이층으로 올라가 침대 배정받고 샤워하고 빨래해서 마당에 있는 짤순이(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에 빨래를 짜서 알베르게 안의 넓은 마당에 매여진 빨랫줄에 집게로 집어 잘 널어놓고 따스한 햇살에 우리 몸도 말렸다.
알베르게에서 차와 쿠키를 준비했으니 함께 마시자고 불러서, 휴게실로 들어가 함께 묵는 다른 외국인들과 인사하고 차를 마시며, 푸근해 보이는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의 수다를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듣다가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안내소로 나갔다.
신부님은 이미 밖에서 기다리시다가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신부님도 작년 겨울에 눈보라를 맞으며 까미노를 걸어 산티아고까지 다녀오셨다며, 추운 겨울에 걸었던 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천사들도 많이 만나 힘들었지만 무사히 걸을 수 있었다고 하시며 우리도 까미노 길에서 천사를 만났냐고 물어보셨다. 우리는 '글쎄요.. 모르겠네요' 하니 신부님은 하하 웃으시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신다.
수도원 안에서도 순례자가 묵을 수 있는데, 외국 신부님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기도도 하니까 언어소통이 어느 정도 돼야 좋다고 하시며 우리도 수도원에 묵으려고 하는지 물어보셨다.
우리는 영어에 자신이 없어 그냥 알베르게에서 묵고 가겠다고 하니, 신부님께서는 아쉽지만 그렇게 하라고 하시며 대신 하루를 더 머물라고 하셨다. 수도원 성시간도 참석하고 미사도 참석하면서 까미노 길을 걷는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의 까미노 길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떠나기를 바라셨다.
저녁 7시에 성시간이 있다고 하셔서 수도원 앞 성당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앉아 조용히 묵상하고 있었다. 오래된 낡은 성당 안은 수도원처럼 정갈하고 절제된 물건과 장식만 있었다. 의자도 계단식으로 제대를 보면서 등받이가 없는 긴 의자들이 둥글게 놓여있었다.
시간이 되자 작은 성당 안은 순례자들로 꽉 찬 채 조용히 묵상하고, 신부님들이 함께 합송 하시는 맑고 청아한 성무일도 소리를 들으면서, 나눠주신 프린트를 보며 모두 따라서 합송 했다. 고요한 가운데 어우러진 성무일도 노래는 우리들 모두를 충만하게 했다.
성시간이 끝나고 신부님께 식사를 함께 하시자고 하니,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아서 수도원에서 준비한 식사를 동료 분들과 함께 하셔야 된다고 하시며, 우리에게 수도원에서 묵고 있는 미스 최(은퇴하고 혼자 걷고 있다는)를 소개해 주시면서 같이 가서 식사하라고 하셨다.
식사 후에 마을을 둘러보다 까미노 길에서 자주 만났던 홍 단장을 만났다. 레온에서 남편과 살짝 얼굴을 붉히고 나흘 만에 만나게 되어 반갑게 인사했다.
홍 단장 부부도 수도원 신부님을 만나 인사를 했는데 신부님이 '버그에 물렸으면 옷과 가방 침낭까지 모두 빨아 말려서 입어야 되니,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 사설 알베르게로 가세요' 하시며 갈아입을 옷도 빌려주셨다고 했다. 우리는 홍 단장 부부가 까미노 길의 천사를 만났음을 축하했다.
이튿날도 신부님의 더 머물다 가라는 말씀에 순명하여 우리는 아침 미사를 참례하고 1박만 할 수 있는 수도원 알베르게를 나와 근처에 있는 식당을 겸한 사립 알베르게로 옮겼다. 강화성당의 홍 단장 부부도 여기서 머물고 있어서 또 만났다.
그 사람들도 하루 더 머무른다고 했다. 사립이라고 해서 깔끔하고 편리한 것은 없어서 생각 같아서는 다음 까미노로 떠나고 싶었지만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쉬고 정리하고 떠나길 바라시는 신부님의 말씀 때문에 남았다.
작은 동네지만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중간중간 있는 수도원 성시간을 참석하고, 신부님과의 면담을 통해 '이번 까미노를 잘 걷고 돌아가 다음에는 또 걷기 위해 오지 말고 삶의 까미노를 잘 걸으라'는 말씀을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라바날은 스페인의 대도시가 아닌 작은 시골 마을이라서 관광을 위해 몸과 마음이 바쁘지 않아 오롯한 쉼을 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