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사전 #3
원래
[같은 말] 본디 : 사물이 전하여 내려온 그 처음. / 처음부터 또는 근본부터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과는 15000원짜리 교재를 공동구매해서 9500원에 살 수 있었는데 한 동기가 50명이 잔돈 500원을 가져오는 것은 번거로우니 과대표가 대표로 25000원을 더 내자는 제안을 했다. '원래 과대표는 이럴 때 봉사하라는 것'이라면서...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원래라는 단어를 싫어하게 된 것이 말이다. 이때부터 나는 원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곧, '마땅한 논리는 없지만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군대에서, 취업전선에서, 직장에서 원래는 굉장히 다양한 상황에서 일상에 침투해왔다. 때론 부당한 대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때론 뭔가 잘못되고 있지만 바로잡기 귀찮을 때 사용하는 핑계로. 이렇게, 저렇게 갖다 붙여서 '원래 그렇다'는 논리가 성립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간혹 이에 저항하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펼치면 충고와 조언을 가장한 압박이 나를 '불평이 많은 사람' 혹은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원래 그런 것들이 원래 그렇다는 이유로 나를 압박해와도 나는 스스로 침생각하기에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해야 했다. 그래서 나느 무수한 원래와 부딪혔고, 덕분에 탈이 참 많은 삶을 살아왔다. 원래와 싸운다는 것은 곧,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사람과 싸우고 굳이 힘들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힘들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말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둥글게 살아야 잘 산다"라고. 재미있는 건 이런 말을 할 때에도 "원래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원래 둥글게 살아야 잘 산다"라며 원래가 침투해 왔다는 것이다.
원래와 싸우는 것은 때론 재미있지만 대부분 힘들다. 대체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변화를 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최대한 많은 상황에서 원래를 헤쳐나갈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