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국의시니 Oct 19. 2021

증명사진 망친 날

망쳐서 다행이다.
























외국인 신분으로 살게되면 정기적으로 신분 증명 서류를 업데이트 해야한다. 일본에는 재류카드라는 신분증이 있는데, 나는 아직 이민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나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뉴비로서 결혼비자임에도 매년 이민국의 부름을 받고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재류카드 만료기한에 맞춰서 증명사진을 찍었다. 셀프 사진기에서 찍은 사진들이 으레 그렇듯, 나라고 별 수 있나. 우스꽝스럽게 나왔지만 어차피 내년에 또 찍어야 할 사진이고, 사진 따위에 자아를 투영하는 타입은 아닌지라 적당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신발을 벗으면서 사진을 보자고 한게 나는 기뻤다. 그 말은 집에 돌아오는 내내 내가 어떤 사진을 찍었을지 혼자 궁금해하면서 왔다는 뜻이니까. 사진을 받아들고 웃음을 터뜨리고 같이 깔깔 거리는 것도 좋았다. 결혼 생활이 뭐 별거야? 이런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나가면서 단단해지는거지. 


오늘, 사진을 망쳐서 참 다행이다.

이전 09화 남편의 취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