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려도 죽는 저주 따위는 없지만 쉽지 않을걸!
스웨덴의 스피닝 마스터 레나가 털실 만들기를 준비해 카펠라고든으로 찾아왔다. 텍스타일 여러 매체에도 자주 실리는 유명한 장인 레나는 실제로 보니 환한 웃는 얼굴의 마음씨 좋은 할머니 같았다.
레나의 삶은 흡사 동화 속에 나오는 평화로운 할머니 같았다. 목장에서 직접 양을 기르며 양털을 깎고 스피닝을 해서 털실을 만들어 뜨개질도 하고 팔기도 한다. 다양한 종류의 양들을 교배해 새로운 털을 얻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스피닝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섬유를 꼬아서 실을 만드는 과정이다. 한국어로는 방적이라 한다. 스피닝의 가장 원시적인 방법은 손으로 섬유 다발을 꼬아서 실을 만드는 것이다. 손에서 한 단계 발전된 것이 방추를 돌려 만드는 방식. 그 후에는 물레로 점점 발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목화가 한국에 들어올 때 면사의 방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번 워크숍 주제는 털실로 실 만들기다. 이제 실로 뭔가를 만드는 건 나름 해봤지만 양털로 실을 만드게 될 줄이야! 지난번 귀닐라버그에서 직접 가위로 깎은 양털을 사용해 실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레나의 워크숍이 있기 전 주말 따듯한 물에 담가 헹궈서 잘 말려놓았다.
이건 숫양의 털이라 스피닝에는 별로야
준비한 양털을 레나가 보자마자 바로 알아차렸다. 어쩐지 양 냄새가 심하더라니! 털실을 만드는 양털은 모두 암양에서 나온다. 숫양의 털은 거칠고 냄새가 심해 실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 냄새만으로 암양인지 숫양인지 알아내다니, 정말 평생 양을 사랑하는 장인이 틀림없다.
첫 번째, 카딩.
양털에 섞인 풀이나 잡물을 걸러내고 뭉친 곳을 펴서 가지런히 만든다. 카딩은 간단히 말하자면 빗질을 해서 양털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무겁고 끈적하던 양털이 마법처럼 솜사탕같이 가벼워진다.
카딩 하기
빗을 두 개 준비한다. 빗1에 양털 뭉치 몇 가닥을 올려놓는다. 양 털의 끝부분이 빗의 위쪽을 보게 올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빗2로 빗질을 하며 양털을 빗2로 옮긴다. 이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양털이 펴지면서 얇은 털이 되어 빗에 엉겨있다. 이제 다시 빗1로 빗질을 한다. 이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하고 빗살에서 조심히 떼어낸다. 이제 솜털같이 가볍고 가느다란 섬유 뭉치를 볼 수 있다.
두 번째, 스피닝.
이제 구름 같은 섬유로 실을 만들 수 있다. 초보자에게 가장 쉬운 방법은 방추라고 불리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아래쪽의 팽이같이 생긴 것을 돌리면 카딩해둔 섬유 뭉치가 꼬아지며 실이 되는 원리다. 돌리는 게 재밌어 계속하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들쭉날쭉하던 실 두께는 일정해지고 끊기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색색의 울을 섞어 컬러실까지 만들었다.
스피닝 하기
왼쪽 손목 위에 섬유를 걸쳐두고 왼손으로 살짝 잡는다. 오른손으로 방추를 돌리고 왼손으로 잡은 섬유를 3cm 정도 조금 길게 늘인다. 방추가 돌아가며 왼손으로 늘린 곳의 섬유가 꼬아지며 실이 된다. 스피닝을 하고 난 후엔 실이 꼬이지 않게 감아 타래를 만들어 스팀으로 한번 픽스하고 보관해둔다
드디어 등장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도 나오는 물레! 물레는 발로 페달을 밟아 돌돌 돌려서 섬유에서 실을 만드는 기계다. 방추보다 더 효율적인 실 만들기가 가능하다.
카펠라고든에 오기 전부터 이 물레에 대한 환상 비슷한 것이 있었다. 텍스타일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써보고 싶을 듯한 도구일 것이다. 머리 하얀 할머니 레나가 물레를 돌리고 있으니 고전 영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잠깐 들었다.
물레는 동화책에서만 봐야 해
그러나 내 환상은 금방 깨졌다. 도대체 물레를 쓰는 방법을 익힐 수가 없었다. 페달을 밟는 스피드를 조절해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물레를 돌리며 한 손으로 잡은 섬유를 놓아 실을 꼬고, 다른 손으로 꼬인 실을 실패 쪽으로 옮기고... 세상 정신없는 물레 돌리기였다. 결국 10센티도 못 하고 물레는 포기했다. 잘하는 친구에게 자리를 내준 후 날렵한 손놀림을 부러움 반 신기함 반으로 구경했다.
스피닝 한 털실로는 뜨개질을 했다. 뭘 만들지 계획 없이 무작정 시작한 뜨개질이다. 워낙 실 굵기가 일정하지 않고 색도 고르지 않아 간단한 테크닉을 택했다. 그랬더니 손바닥보다 작고 귀여운 샘플들이 완성되었다.
물레 사용법을 익히지 못한 아쉬움도 잠깐, 스피닝은 별로 관심 가는 분야가 아니어서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제 양털을 깎아 실을 만들고 그 실을 사용해 직물을 만드는 것까지 다 해 봤으니, 필요한 건 뭐든지 만드는 수공예 학교에 온 이유 하나 정도는 달성하지 않았을까?